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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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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A 씨는 퇴직 후 공권력 피해자 구제 단체인 ‘○○○○운동본부’의 대표로 활동하며 굵직한 사회적 이슈에 고발인으로 나섰다. 2005년 6월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진술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증 혐의로 고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처음에 순수했던 고발정신은 갈수록 변질됐다. 재판에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접근해 낮은 가격으로 소송을 대신 제기했다. 본인이나 단체 명의도 모자라 피고 회사의 공동사업자 등으로 등기해 돈이 걸린 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떼쓰기 소송’도 쏟아냈다. 재판부에 소송과 관련된 수십 건의 정보공개를 청구하는가 하면 재판부 직원의 전화 받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었다.
10여 년간 그가 낸 소송은 100여 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진행 중인 사건만 28건에 이른다. A 씨가 억지소송으로 악명을 떨치자 급기야 그가 대표로 있는 단체는 지난해 12월 그를 대표직에서 쫓아냈다.
A 씨의 사례는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합의나 조정보다는 ‘소송 만능주의’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면서 법원이 업무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지난해 대법원이 맡은 사건은 2만6392건. 미국 연방대법원 연간 처리 건수(90건 안팎)보다 290배가량 많다. 대법관(13명) 1인당 연간 처리 사건 수는 2030건이며 고등법원 판사는 1인당 111건, 지방법원본원은 1인당 876건에 이른다. 판사 1명당 매일 2, 3건의 판결을 내리는 셈이다.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사례도 급증세다. 2005년 6만9187명에서 지난해 7만 명을 훌쩍 넘었고 올해는 8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판사나 법원 직원들을 압박하려는 목적으로 대부분 제기되는 진정 및 소송도 매년 1000건 넘게 들어온다.
법원 관계자는 “판결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식의 압박성 소송에 시달려 다른 재판에 집중을 못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3심제하에서 소송은 국민의 엄연한 권리이기 때문에 소송꾼만 탓할 수도 없다. 전관예우 등 법원의 원죄 또한 소송 급증의 한 원인임을 되새겨 법원도 제도 개선과 함께 신뢰 회복에도 힘을 쏟길 바란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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