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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5월 3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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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나온 20대는 학교가, 변호사가 된 30대는 사무실과 법정이 나의 무대였다. 젊은 나이에 큰 집도 갖게 되었고 맘만 먹으면 남들이 알아주는 자리도 슬쩍 앉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없었다. 밤늦도록 소송 기록을 뒤적이다 보면 마음이 무겁고 허전했다. 세상의 온갖 사건만 다루다 인생을 마쳐야 하나?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이런 것인가!
문득 음악이 듣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밤새도록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한 줄기 샘물이었다.
20년 전 겨울, 처음 방문한 미국 뉴욕은 추웠다. 고층건물로 빽빽한 그 삭막한 도시가 세계의 중심이라니…. 우리의 종착지가 여기란 말인가? 온갖 인종이 돈을 향해 뛰고, 문화와 종교까지도 상품화하는 그 도시에서 나는 다시 절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씬한 여인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빌딩 숲의 화려한 광고판을 지나 시멘트를 퍼부은 공연장에 들어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바다와 바람과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인간은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도 짓지만 그 삭막함 속에 아기의 살결보다 더 고운 부드러움도 만들어 내는 존재였다. 그 공연은 어릴 적 내가 살았던 세상, 나만이 간직한 줄 알았던 순수한 꿈까지도 눈앞에 보여주었다. 내가 받고 싶은 것,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돈이나 자리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임을 절감했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직접 인간의 순수가 숨쉬는 공연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꿈은 이루어진다. 결국 나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서초동 법조단지에 ‘화이트홀’이라는 공연장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검사장 친구는 “삭막한 법조단지에 공연장이라니, 누가 오겠느냐?”며 걱정해 주었다. 나도 ‘텅 빈’ 공연장이 떠올라 두려웠다. 그때 단 한 명의 관객이 오더라도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공연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더니 실패도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공연 때마다 관객들이 홀을 꽉 채워주었다. 우리 가곡으로 꾸민 첫 음악회를 찾은 중년의 한 부부는 눈물을 흘렸다. 음악회장에 처음 와 봤다는 관객이 다수였다. 함께 웃고 울면서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며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이 도처에 있었다.
한 30대 관객은 “음악회가 끝난 뒤 지하철을 탔는데 늘 무관심했던 주변 사람들이 달라 보였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소녀처럼 변하더라는 어느 직장인의 편지, 가족끼리 공연장에서 들은 노래를 합창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행복을 만끽했다는 어느 가장의 전언….
공연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없는 아이디어, 잃어버린 순수와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좋은 재료다. 나는 공연장에서 사람의 순수한 향기를 느끼게 하고 싶다.
어릴 적 뛰놀았던 그 바다를 다시 찾은 듯 나는 지금 가슴이 설렌다.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지 못해 늘 아쉬웠던 어릴 적 그 바람과 파도 소리를 이곳에서 들려주리라! 그 하늘도 보여주리라. 나는 알고 있다. 관객들이 공연보다 더 귀한 것을 만나러 공연장에 온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사람의 향기라는 것을.
윤학 변호사·화이트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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