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욕망과 질투 사이

  • 입력 2008년 4월 25일 02시 57분


총선에서 불거진 뉴타운 논쟁을 둘러싸고 ‘욕망의 정치’라는 섹시한 용어가 등장했다. “뉴타운과 특목고로 상징되는 욕망의 정치가 수도권에선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지난주 통합민주당의 총선 평가장에 발표자로 나온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분석이다.

잘살고 싶다는 마음이 죄악인가

아닌 게 아니라 서울 강성노(강북 성북 노원구) 지역에선 뉴타운 공약을 놓고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속았다 시리즈’ 2탄으로 뜨겁다. 여기서 누가 속고 속였는지, 뉴타운 당장 지정과 단계적 확대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는 건 또 다른 정쟁일 뿐이다. 그보다는 뉴타운 공약을 내건 후보자는 여야가 엇비슷했다는 사실이, 좋은 주거 환경과 교육 여건을 간절히 원하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

환경정의 공동대표인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 엊그제 참여연대 토론회에서 뉴타운 건설로 인한 ‘강북의 강남화’ 현상을 지적했다. 사회적 명분의 관점보다 사적 이익을 지켜줄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하는 행태가 두드러지면서 앞으로 분배정의의 실현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두 교수님 논리대로라면 지금 낡은 집에서 좁은 도로를 지나 낙후된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사회적 명분으로 무장한 채 평생을, 자식 대까지, 꼼짝없이 그렇게 살아야 분배정의가 실현될 판이다. 우리 동네가 강남만큼 살기 좋아지고 아이들 공부도 잘 시켜주는 학교를 바라는 사람은 투기꾼 아니면 욕심 사나운 이기주의자로 몰리게 생겼다.

하지만 묻고 싶다. 꼭 뉴타운이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취약지역 주거환경 개선은 필요한 게 아닌지. 꼭 특목고가 아니어도 학교에서 영어력(英語力)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주는 공교육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아닌지. 그래서 강북이 강남화하고 전 국민이 강남주민처럼 사는 일이 그리도 원통절통한 일인지.

김 교수는 욕망의 정치가 세계화 신자유주의시대 ‘이익의 정치’라며 이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가치의 정치’를 들었다. 경제적 안정보다 자아실현 환경 평화 여성 등 탈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를 말한단다. 그가 가치의 정치 대표주자로 꼽은 이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다. 그러나 문 대표는 탈물질적 가치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 비례대표 후보자를 공천하고도 책임지지 않고 미적거림으로써 가치의 정치를 위선의 정치로 추락시키는 형국이다.

아무리 물질적 가치가 우습거나 더러워 보인대도 지금 다수 국민이 원하는 건 경제 살리기다. 성장률이 몇 %인가보다 보통사람에게 절실한 것은 내 살림이 작년보다 나아지고 내 자식이 나보다는 잘살게 되는 일이다. 이 당연한 욕망도 죄스러워해야 한다면 세계를 볼 일이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모델로 삼는 유럽에서도 세계화시대의 생존 전략은 ‘성장과 일자리의 리스본 어젠다’로 모아진다. 북유럽국가는 법인세가 미국보다 낮을 만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취약계층에 무조건 퍼주는 존 롤스식 사회정의는 없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톱10 싱크탱크 중 첫손에 꼽히는 유럽정책연구센터(CEPS)도 지난달 유럽모델 보고서에서 “세계화시대의 정의는 그들에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경쟁력을 키우는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만의 가치, 안 통한다

욕망의 정치 반대 개념은 가치의 정치가 아니다. ‘질투의 정치’다. 내가 잘되기를 원하는 게 욕망이라면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게 질투다. 앞선 이에 대한 증오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차라리 모두가 뒤처져 평등을 이루자는 수구 좌파정치는 우리도 알 만큼 안다. 그 결과가 세계경제의 유례없는 호황기였던 지난 몇 년간 우리만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현실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더 많은 성장과 기회라는 ‘또 다른 이익의 정치’에 더 많은 정의라는 ‘가치의 정치’를 결합시킨 중도 진보노선을 민주당에 제안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당한 욕망과 이를 채워주는 정치를 ‘정의 없는 성장’이라고 매도하는 사회에선 성장도, 정의도 놓칠까 두렵다. 자신들만의 가치를 주장하며 발목잡기를 일삼는 좌파만 ‘진보’라고 믿는다면 더욱 그러하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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