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군산 장항 흙모래만 잘 써도 나랏빚 줄인다

  • 입력 2008년 1월 20일 22시 57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표적 예산 낭비 사례로 꼽은 군산·장항 토사 매립지 건설공사는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국민의 혈세(血稅)인 예산을 얼마나 만만히 여기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해양수산부는 2010년 이후 군산·장항의 항로 준설로 발생하는 토사(土砂)를 버리기 위해 1689억 원을 들여 새만금 인근에 매립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새만금 지구도 간척사업을 하려면 많은 양의 토사가 필요하다. 군산·장항 토사를 새만금 간척용으로 쓰면 양쪽의 비용을 줄여 8439억 원의 예산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인수위 설명이다.

해양부 측은 “새만금 개발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지만 민간 기업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수천억 원이 드는 프로젝트라면 사업 타당성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관계기관 간 협의를 통해 예산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야 한다.

세금이 새는 현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에 널려 있다. 연말이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뜯어내고 새 블록으로 바꾸는 속사정을 국민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 예산이 남으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장비라도 일단 사 놓고, 그래도 돈이 남으면 외유성 출장을 가기도 한다.

인수위가 “예산을 절감해 불용액(예산을 쓰고 남은 돈)이 생기더라도 이듬해에 예산을 깎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예산 낭비의 구조적 요인을 시정하겠다는 뜻이지만 근본 해결책은 못 된다. ‘보도블록 교체’ 관행만 해도 “뿌리 뽑겠다”는 장담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예산을 ‘눈먼 돈’, 세금을 ‘남의 돈’ 정도로 취급하는 일부 공무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그대로 두고는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2년 말 133조6000억 원이던 국가 채무는 작년 말 300조 원(추정치)으로 125%나 증가했다. 세계적인 ‘작은 정부’ 추세에 역행해 정부 조직을 무분별하게 키우고 공무원 인건비 지출을 늘린 탓이 크다. 여기에 중복 지출, 경제성을 무시한 투자, 각종 선심성 사업도 한몫했다. 국가 재정도 기업 경영이나 가계 살림과 다를 바 없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아 빚으로 연명하는 조직이라면 기다리는 건 파산뿐이다.

인수위는 예산 편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부처별로 예산의 10%를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낭비 요인을 없애면 정부 지출을 20% 줄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없애야 기업 활동을 되살릴 수 있듯이 군산·장항의 토사만 잘 써도 나랏빚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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