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본받을 만한 日의 ‘가업 잇기 지원’

  • 입력 2008년 1월 1일 02시 58분


일본 나라(奈良) 현 고조(五조) 시의 한 작은 산골마을에 있는 사이코지(西光寺)에서는 오전 6시와 정오, 일몰시간 등 하루 3차례 주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은은한 종소리가 울린다.

종을 치는 이는 스님이 아니라 타이머에 맞춰 작동하는 기계다. 절을 운영할 스님을 구하지 못한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짜낸 아이디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역의 사찰 1600여 곳이 대당 가격 60만∼100만 엔짜리 자동타종장치를 설치해 놓고 있다.

저(低)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몸살을 앓는 곳은 사찰만이 아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체 중에는 후계자 난으로 폐업하는 곳도 많다.

1960년대 800여 곳에 이르던 아이치(愛知) 현의 대중목욕탕은 최근 190곳으로 줄었고, 도쿄(東京)에서도 매년 50곳가량이 문을 닫고 있다. 한 연구소는 중소기업의 80%가량이 후계자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일본은 부모가 이룬 가업을 자식이 계승하는 전통이 유별나게 강한 나라다.

지난해 초 135년 역사를 가진 이발소 ‘기타도코’에 간 적이 있다. 이발소의 5대 주인은 후나코시 지요라는 이름의 40대 초반 여성이었다.

“일본에서 여성 이발사는 드문 것 같은데 직업을 선택할 때 고민은 없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남자 형제가 없다 보니 내가 자연스럽게 아버지 일을 돕게 됐다”며 “고민할 이유가 뭐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젊은이들에게서는 후나코시 씨와 같은 사고방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발소보다 훨씬 ‘폼 나는’ 사업도 “골치 아프다”며 물려받기를 거부하는 젊은층이 많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이런 현상을 국가경제의 기반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보고 가업 상속을 권장하는 각종 세제 및 금융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 면에서 일본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가업을 잇는다는 의식은 일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다.

다행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은 한국의 유망 중소기업들이 가업을 쉽게 승계할 수 있도록 상속세를 감면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에는 ‘좋은 일은 서두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속담도 ‘쇠뿔은 단김에 빼라’고 했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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