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集票員으로 가는 장관들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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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환경부 장관의 이력은 다채롭다. 치과 의사인 그는 극단과 시민단체 대표, 대구 남구청장을 지냈고 2002년 대구시장 선거와 2004년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그런 그가 또 출마 경력을 추가할 것 같다. 5·31지방선거에서 여당의 대구시장 후보로 ‘징발’된 것이다. 입각(入閣) 8개월 만이다.

역대 정부의 장관 재임 기간은 박정희 정부에서 평균 19.4개월로 가장 길었다. 전두환(17.8개월) 노태우(13개월) 김영삼(11.6개월) 김대중(10.6개월) 정부로 오면서 점점 짧아졌다.(김호균·21세기 성공 장관론·2004년)

참여정부에서는 달라지나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 조각(組閣) 후 이런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가급적 오래 책임지고 일하도록 하겠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부처는 2년에서 2년 반 정도의 임기를 보장하고, 정해진 방향에 따라 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부처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해도 좋다.”

노 대통령은 특히 자신과 임기를 같이하고 싶은 장관으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장관 수명’에 관한 대통령의 초심(初心)은 초장에 빈말이 됐다. 오늘 아침 현재까지 2년 넘게 장관을 하고 있는 사람은 진대제 정보통신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뿐이다. 교육부 장관은 3번이나 바뀌었다. 참여정부 3년간 장관에 임명된 사람은 55명으로 35명은 이미 자리를 떠났다. 이 중 재임 2년을 넘긴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17명은 2년 미만∼1년 이상, 15명은 1년이 채 안됐다. 이들 전직(前職)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3.7개월이다.

한두 장관 교체를 포함해 참여정부의 개각 횟수는 17차례다. 1년에 5차례 이상 크고 작은 개각을 한 셈이다. 2004년 총선 때는 4명의 현직 장관을 ‘징발’했다. 총선 후에는 여당 대선 예비주자를 입각시켜 경력 관리를 하도록 했고, 신세 진 정치인에게 장관 자리로 보은(報恩)하려고 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장관을 내보내기도 했다. 인사 검증이 제대로 안 됐거나 자질이 미흡한 인사를 임명했다가 중도 하차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이르면 오늘 5개 부처 안팎의 장관을 바꾸는 ‘선거용 개각’을 한다. 하지만 출마 예정 장관들은 개각 전에 이미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이 환경부 장관은 대구에 내려가 “지방권력을 교체하자”고 외쳤다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주의를 받았다. 부산시장을 노리는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 또한 현지에서 “(부산의) 주도 세력을 바꿔야 한다”고 말해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충남지사 후보로 나서는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은 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그제 밤 출판기념회를 열어 구설(口舌)에 올랐다. 부처 업무는 제쳐 둔 채 선거에만 목을 매는 이 장관과 ‘오(吳) 브러더스’의 행태가 딱하다. 불법 선거를 일삼는 장관들을 공직에서 영구 추방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대로라면 그들은 아예 출마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선거 때만 되면 장관을 여당 집표원(集票員)으로 내모니 국정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기대하는 국민이 어리석은 셈이다. 이런 체질의 정권 성적표가 좋기를 기대하는 것도 속없는 일이다. 선거가 끝나면 또 낙선자를 끼워 넣는 개각을 하지나 않을지, 전력(前歷)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정권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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