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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8월 1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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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람들이 갖는 당혹감의 중심에 공운영 씨가 있다. 처음엔 “내가 입을 열면…”이라며 협박하다가, 파문이 커지자 자술서를 공개한 뒤 자해(自害) 소동을 벌이고, 그런 뒤에도 집에 도청 테이프와 녹취보고서를 쌓아 놓고 있다가 검찰에 압수당한 전직 비밀도청팀장. 그런 공 씨를 보면서 ‘저런 사람이 직장 선배였다니…’ 하는 부끄러움과 미움의 감정이 ‘친정 식구’들의 가슴에 어찌 들끓지 않겠는가.
공 씨는 도청 테이프를 복직(復職) 등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활용하려 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들이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으로,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공 씨에게 도청을 지시한 사람들, 도청 자료를 악용한 ‘윗선’은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 뒷전에 숨어 있다. 그들과 공 씨 사이에는 직위(職位)의 높낮이 외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불법 도청된 내용들은 전 국정원 감찰실장의 표현대로 ‘사회 모든 분야가 붕괴될 만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런 정보를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이른바 ‘민주화 정권’들의 ‘윗선’이야말로 국기(國紀) 문란의 장본인들일 터이다.
정보기관은 국익(國益)을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한다. 제3공화국 시절, 중앙정보부가 동남아 등에서 수확량이 많은 우량 볍씨를 몰래 들여와 통일벼 개발에 일조했고, 통일벼는 식량난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런 행위는, 물론 불법이었지만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도청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특정 정권의 소수 실세들의 사익(私益)을 위해 자행된 불법이다. 그것도 ‘민주화 세력’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서.
그렇다면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은 나와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비밀도청팀의 재건 과정과 지시 라인, 도청된 테이프의 사용처, 또 다른 도청 테이프는 없는지 등을 한 점 의혹 없이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그것이 달라진 시대의 국익에 부합되는 일일 것이다.
국정원은 최근 원장이 바뀌면서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一新)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던 참이었다고 한다. 이번 파문이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하지만 신임 김승규 원장과 수뇌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불법의 고리를 확실히 끊고, ‘제 할 일 하는’ 정보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확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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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에 있었던 국정원 입사시험의 경쟁률은 1000 대 1에 가까웠다. 응시생 중에는 현역 변호사와 회계사까지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정보맨’이 되기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누구든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렇기에 국정원의 결단이 더욱 요구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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