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出家와 家出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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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은 글자 앞뒤가 바뀐 것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판이하다. 스님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은 출가지만, 불량 청소년이나 바람난 여자가 집을 뛰쳐나가는 것은 가출이다. 전자는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해 자기를 버리는 것이고, 후자는 도피와 쾌락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출진(出塵)이라는 표현도 쓴다. 세속의 먼지를 벗어난다는 뜻이다. 한국불교는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출가한 경우는 높이 평가하지만, 출가한 뒤 다시 세속으로 돌아왔다가 재입산하는 것은 흠으로 친다. 한 사람이 출가해 일가친척 40여명이 승려가 된 경우도 있다.

▷‘무소유’의 법정(法頂) 스님이 언젠가 “수도승이 되기 위해 입산 출가한 사람도 어느 계절에 출가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 깊게 들었다. 달뜨기 쉬운 봄에 집을 나온 사람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환속(還俗)하는 경우가 많은데, 차분한 가을이나 겨울에 집을 나온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자에 ‘부모 형제와 친지를 여의고 무엇을 위해 출가 수행자가 되었는지 시시로 그 뜻을 살펴야 한다’는 수칙(守則)을 써두었던 법정 스님은 출가 이후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다.

▷국회의원, KBS 사장, 대학 총장을 역임한 박현태(朴鉉兌)씨가 만 70세에 출가해 어제 전남 순천시 선암사에서 정식으로 계(戒)를 받았다. 대처(帶妻) 종단인 태고종의 승려 지연(志淵)이 된 그는 “이 나이에 속세의 명리를 버리고 고행을 하겠다든지 하는 거창한 목표나 계획을 갖고 출가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출가의 변(辯)을 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전생에 분명 무슨 인연(因緣)이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출가란 무엇인가. 서산(西山)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런 법문을 남겼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산을 구해서도 아니다/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끝없는 중생을 건지려고 해서다.’ 석가모니 출가 이후 어느 누구도 스님 모집한다는 광고를 낸 적이 없건만, 오늘도 많은 이들이 보다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염(念)을 세워 집을 나선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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