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태한/'010'

  • 입력 2003년 1월 19일 18시 24분


외국의 휴대전화 서비스는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외국에서는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번호를 보고는 소유자가 어떤 업체에 가입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번호가 유선전화인지 휴대전화인지조차 알 수 없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내년 1월부터 국내에서도 휴대전화 번호로 서비스 업체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휴대전화의 앞자리 세 개의 식별번호를 ‘010’으로 통일하는 번호이동성제도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나 휴대전화 후발업체들은 여러 이유로 이 제도를 서둘러 도입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우선 소비자로서는 도중에 업체를 바꿔도 쓰던 번호를 계속 쓸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이다. 특정업체 식별번호를 갖고 있느냐가 신분의 상징이 되고 있는 젊은이들의 소비풍조도 주춤해질 것같다. 요금이 비싼 업체의 번호를 애써 이용하면서까지 굳이 체면을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 3위 업체들은 이 제도 시행으로 1위 업체인 SK텔레콤의 독주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선발업체로서 ‘011’이라는 최정상의 브랜드를 포기해야하는 SK텔레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SK텔레콤 고위 관계자가 “정권 말기에 이 같은 제도를 급하게 도입한 배경이 의심스럽다”며 “행정소송을 포함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나섰다선 것도 SK텔레콤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은 소비자 후생의 극대화다. 이런 관점에서 비록 이번 결정이 SK텔레콤에 큰 타격을 준다해도 소비자들에게 유리하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겠다.

물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려면 사전에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줄여야 한다. 따라서 이번과 같이 ‘깜짝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면 아무리 그 취지가 옳더라도 무리를 낳게 마련이다.

SK텔레콤도 좀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011’이 자기만 쓸 수 있는 독자적인 브랜드라 고집 부릴 뚜렷한 근거도 없지 않은가.

통신업체들이 소비자 만족을 극대화하는 진정한 승부를 펼치기를 기대한다.

김태한 경제부기자 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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