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특별기고]"자유로운 만남이 통일 지름길"

  • 입력 2000년 8월 14일 20시 11분


<역사적인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맞는 우리에게 30여년에 걸친 이산가족의 정기적인 방문 끝에 결국 통일을 성취한 독일의 경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휴가중인 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 대신 루드거 폴머 외무차관(48)이 독일정부를 대표해 분단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축하하는 특별기고를 본지에 보내왔다. 폴머 차관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남북간 인적교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교류의 물꼬가 트이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독일국민은 55년 동안 한반도에 드리워진 분단의 사슬을 끊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이를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롭고 희망찬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한국 못지 않게 오랜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경험은 남북 간 신뢰구축이 긴장완화와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통일이라는 길고 험난한 노정에서 6월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시점에서 남북한 당국자와 국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과 용기다. 이런 용기와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만 세계에서 가장 긴장이 고조된 지역중 하나인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가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안보정책과는 별개로 남북관계에 있어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현안은 1000만 이산가족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이다. 독일정부와 국민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공동선언을 남북한 정부가 어떻게 실천할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반세기가 넘는 동안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문제다. 55년 동안 편지 한 통 없이 살아온 가족들이 광복 55주년을 맞는 오늘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비극은 새로운 희망과 기적을 낳는 소중한 만남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산가족의 만남이 정례화되고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친지를 방문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분단독일의 역사는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상호방문이 긴장완화를 이루는 지름길임을 보여줬다. 당시 많은 정치인은 이산가족의 자유방문이 동서독 정치체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오히려 독일민족의 정체성을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동서독의 통일은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30여년에 걸쳐 서신교환과 방문으로 닫혀진 국경을 조금씩 열면서 상호신뢰가 구축돼 달성된 것이다.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오늘 성사되는 역사적인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선언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정기적인 방문과 결국에는 모두가 소원하는 가족결합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독일이 통일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통일의 결과에 대해 많은 독일국민과 정치인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통일 후 나타난 현실이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기금의 확보를 위해 재정적인 부담이 증가하고 동서독의 지역격차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등 예견됐던 문제들이 훨씬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독일 사람이 통일의 결과를 비판한다. 그러나 독일국민 중 누구도 통일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독일국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와 평화를 포기하지 않고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는 경제분야의 세계화와 정치적인 협력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국가 간의 분쟁과 한 민족내의 갈등은 이제 미래의 영역이 아닌 과거에 속하게 될 것이다.

남북한도 교류가 확대되고 통일을 이루게 되면 분명히 독일과 같이 많은 문제점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으로 인해 이산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남북 간 적대적인 관계로 인해 지불해야 될 비용에 비하면 오히려 하찮은 것일 수 있다.

통일을 경험한 독일정부는 한국 국민에게 통일이 민족의 숙원이라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독일정부와 국민은 남북한이 하루빨리 통일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 역사적인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이 가족결합과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교류로 이어져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이루는 데 기여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정리〓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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