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포럼]김경원/경협-개방 연계전략 필요

  • 입력 2000년 5월 1일 19시 08분


최근 정부가 전하는 북한의 태도를 보면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북한이 실제로 정상회담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남북관계 문제에 대해 남한과 두 번 합의한 적이 있다. 1972년 7·4 공동성명과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그것이다. 이번에 남북 합의가 이루어지면 세번째 합의가 된다.

이 세 번의 남북합의는 모두 북한이 위기를 당면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7·4 공동성명은 1971년 ‘미 중공 접근’으로 충격을 받은 북한이 우선 남한과 대결관계를 완화함으로써 생존을 확보하려는 전략에서 나왔다. 92년 기본합의서의 배경에는 91년 소련 붕괴라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은 89년 가을부터 시작된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을 자연발생적인 사회학적 변동이 아니라 서방제국주의 세력의 계획된 흡수전략의 결과라고 보고 무엇보다 남한의 흡수음모를 방지하기 위해 기본합의서에 동의했다고 본다.

그러면 북한이 6월 정상회담을 추구하는 동기는 어디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남북간 합의는 북한이 위기에 처함으로써 가능하게 됐다. 다만 이번에 당면한 위기는 북한의 경제 파탄에 기인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점이다. 지금 북한경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그대로 방치하면 얼마 안가 북한사회가 마비될 정도다. 따라서 김정일은 경제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원래부터 북한은 말로는 주체와 자주를 떠들면서도 경제는 소련과 중국에 크게 의존했다. 90년대 들어 중국과 소련이 북한을 더 이상 과거처럼 원조할 수 없게 되자 북한경제는 위기국면으로 들어갔는데 북한 통치자들은 아직도 대외 의존적 발상을 버리지 못하고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지원국을 구하는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이러한 발상에서 북한은 일본 미국 등이 새로운 경제원조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지만 경제가 절박해진 오늘 북한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는 적어도 당분간 경제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같은 절박한 상황에서 북한은 마침 햇볕정책을 추구하는 남한을 가장 현실성 있는 경제지원국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추구하는 데는 남한의 경제협력 이외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가 있다. 북한은 작년 가을부터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외교활동을 적극 전개했는데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도 있었다. 많은 서방국가들은 북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충고했고 특히 미국 일본과의 협상에서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이 자신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 것 같다. 따라서 북한의 남북정상회담 추구 정책은 공산주의 형제국가들이 모두 몰락한 고독한 탈냉전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고도로 계산된 생존전략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는 바로 이같은 북한의 생존전략을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북한사회의 개방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 물론 북한은 필요한 경제원조만을 얻어내고 우리가 요구하는 조치는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당면한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72년 및 92년과는 달리 지금 그들이 당면한 경제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합의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한국이 하기에 따라서는 이번 정상회담은 긴장완화와 북한사회의 개방을 실현하는 역사적 과정의 실질적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상적인 수사학이 아니다. 북한에 제공하는 경제원조에 연계해 평화와 개방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다가오는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경원(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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