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강숙/선비정신이 있는가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53분


인간은 문화의 수인(囚人)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간이 문화로 부터 얼마만큼 자유로운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언어문화권으로 부터 인간이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 같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떠한 언어문화권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예를 보라.

나는 두 아이를 한국에 두고 아내와 같이 미국 유학을 간 일이 있다. 딸 아이는 장모님이 계시는 서울에, 아들 아이는 어머님이 계시는 대구에 맡겨두고, 아내와 나는 미국 유학의 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막내 아이가 태어났다. 세월이 흐른 후, 한국에 두고 온 두 아이를 미국으로 불렀다. 아이들의 언어 행위를 보고 나는 놀랐다. 서울에서 자란 딸 아이는 나를 ‘아빠’라고 불렀고, 대구에서 자란 아들 아이는 ‘아부지얘’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태어난 막내에겐 내가 ‘대디’였다.

그 당시 나는 문화인류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교수는 “약은 과학일지 모르지만, 맛은 문화”라고 했다. 또 신체적 인간과 문화적 인간의 차이에 대한 설명을 했다. 신체적 인간의 조건은 인간 모두가 같다고 했다. 같기 때문에 서양 사람이나 동양사람에게 ‘같은 약’을 먹여도 된다고 했다. 문화적 인간의 조건은 서양과 동양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음식’을 먹일 수 없다고 했다.

정치문화 음식문화 언론문화라는 말이 있다. 인간이 문화의 수인 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존의 정치문화 음식문화 언론문화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문화의 수인만일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수인이기만 하면 신문화(新文化)는 누가 창조하는가.

내 앞에 놓인 잔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해보자. 내 앞에 놓인 잔으로부터 얼마만큼 내가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요약해 보자. 반드시 잔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 주어진 여건에 동승하느냐, 거부하느냐라는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 앞에 돈이라는 뇌물이 놓여 있을 때, 그것을 거부해야 하는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부패 문화 속에 우리가 이미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라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악과 선이 인간 앞에 놓여 있을 때, 문화가 그것을 강요하게 하는 힘도 가졌겠지만 인간 개개인이 그것을 거부할 힘도 가졌다고 나는 믿는다.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문화의 수인이라는 속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기존 문화의 노예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화라는 ‘전체’의 힘도 거세지만,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체’의 마음이 중요하다. 전체주의와 개체주의의 장단점을 생각하면서, 개체의 선택이 사회문제 해결의 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 사회 교육 경제 예술 정보 지식 언론 문화를 목숨을 걸고 창조하려는, 그 쪽을 선택하지 않고는 못배기는, 이른바 선비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이강숙(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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