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한국말 잘못해요』
며칠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어떤 모임에서 대여섯살짜리 남자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가 은근히 자랑삼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순간 이 아이가 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엄마는 한국말을 못하는 게 미국화되어가는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 아이는 멀지않아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문제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부모를 두었지만 한국말을 못하니 한국사람이랄 수도 없고 한국 문화배경에서 자라고 노란 피부에 까만 머리의 외모를 가졌으니 완전한 미국사람이랄 수도 없다는 고민 말이다.
이런 현상은 해외교포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강남의 유치원생들 중에는 그린은 알아도 초록색이라는 단어는 모르고 사자를 라이언이라고 해야만 알아듣는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가 들린다. 요즘 취학전 아동들 사이에 유행하는 조기 영어교육 영향일 것이다.
물론 일부 계층의 경우이겠지만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들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자연스레 영어를 구사하고 영어단어를 한국말보다 먼저 떠올리는 자기 아이들이 앞으로 세계화의 선두에 설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계화의 대상인 나라밖에서 정작 내가 보고 겪은 현실은 이런 생각들과는 정반대였다.
나도 평소에 세계는 지구촌 한마을이고 나는 지구촌 시민의 한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중동의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노는 아이도 우리 조카이고 아프리카 자이르의 난민문제도 우리 문제라고 진심으로 여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세계시민적 생각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일단 다른 나라에 가려면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여권이다. 국경을 넘을때 나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 한국인의 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여권이 한국인임을 서류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면 깔끔하고 단정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은 긍지의 한국인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세계화란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전혀 다른 맛이 되는 칵테일술이 아니라 각각의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는 과일 칵테일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만의 독특한 맛을 지키는 열쇠는 아름다운 국어이며 그것이 곧 세계로 향한 문을 여는 열쇠라고 나는 믿는다.
한 비 야(오지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