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인드글라스로 한국의 랜드마크 건물 꾸미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화가 사제-대학교수 이어 세 번째 삶 꿈꾸는 조광호 신부

《 “가톨릭 사제로서 못다 읽은 인류 고전을 공부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로 한국의 랜드마크 건물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올해 일흔인 조광호 신부는 여생을 바칠 꿈을 담담하게 말했다. 21일 인천 송도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화가 신부, 대학교수에 이어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이라는 세 번째 길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했다. 》

서울 당산철교의 대형 벽화, 옛 서울역 로비 천장화를 그려 미술가로 널리 알려진 조광호 신부. 그는 “여생을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당산철교의 대형 벽화, 옛 서울역 로비 천장화를 그려 미술가로 널리 알려진 조광호 신부. 그는 “여생을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그는 22일 봉헌된 대구 범어동 주교좌성당에 들어간 스테인드글라스 220점(총 넓이 900m²)을 창작했다. 제대부터 촛대까지 성당 내 성(聖)미술품도 일괄 제작했다. 성당 윗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엔 은하수를, 아랫부분에는 예수의 일생을 콘셉트로 담았다. 특히 조 신부는 요즘 세계적인 추세로 대형 유리에 직접 유약으로 그리고 소성하는 건축아트글라스(architectural art glass)에 여러 색상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새 기법(특허출원)을 도입하기도 했다.

1979년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사제품을 받은 그는 화가 신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당산철교의 대형 벽화와 서소문 순교성지 기념탑, 옛 서울역 로비 천장화 등이 그의 작품이다.

“5년 전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에서 퇴임하면서 무엇을 하며 남은 생애를 보낼까 망설이며 ‘선교사로 나갈까, 작품을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에게 그림은 부차적인 소임이었습니다. 가톨릭 200주년 기념 준비, 출판국장 등 사제로서 교회에서 맡은 소임에서 해방되니까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못해 본 스테인드글라스를 해 보고 싶더군요. 그때 마침 대구대교구에서 범어동 성당 작품 의뢰가 들어온 겁니다.”

대구 범어동주교좌성당 내 소성당의 성가대석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대구 범어동주교좌성당 내 소성당의 성가대석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그는 유리의 물성(物性), 색을 내는 광물가루, 디자인 등 막히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물리학과 화학, 실크스크린 등 전문가에게 일일이 도움을 청했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기계 설치나 운용 등은 국내 전문가가 드물어 공사현장에서 오래 일한 인부들에게 자문했다. 거의 일면식도 없는 이들은 그의 절박한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진정성과 열의를 갖고 누구에게나 도움을 청하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을 알고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스테인드글라스 기술력이 뛰어난 독일 못지않은 공방을 세웠고, 투명하게 색채를 내는 기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특히 독일 이스라엘 등이 고온에서 불투명하게 색깔을 내는 방법을 쓰고 있는데, 저처럼 투명하게 색을 내지는 못해요. 이런 기법을 쓰면 보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가 1000년 이상 가는 강화유리이기 때문에 건축 외관을 꾸미거나 인테리어용 자재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이미 서울의 한 호텔 등 여러 곳에서 야외 행사용 가건물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도입하고 싶다는 의뢰가 왔다.

“특허와 기술을 저 혼자만의 것으로 쓰고 싶지 않아요. 내년부터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전수해줄 생각이에요. 만약 랜드마크 빌딩을 세운다면 특허료나 작품료 없이 인건비만 받고 참여하려고 해요. 이 나이의 신부가 작품 외에 무슨 욕심이 있겠어요. 허허.”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조광호 신부#스테인드글라스#서울 당산철교#범어동주교좌성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