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75>

  • 입력 2009년 4월 20일 13시 15분


문제는 돈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결국 모든 고민은 돈으로 귀결되었다.

사라의 눈이 완전히 감기자, 볼테르는 그녀의 이마에서 손을 떼고 더욱 바삐 움직였다. 둥근 빨래 건조대에 널린 빨래처럼 매달린 기계다리 중 하나를 끌어내렸고 침대 아래에서 다양한 수술 장비를 보조탁자에 올려놓았다. 70퍼센트 이상 기계인 사이보그의 경우 300시간 이상 사이보그 전용 병원에서 인턴을 마친 로봇공학자들에게도 수술 집도가 허락되었다. 물론 의사가 함께 참관한다는 조건 하에.

투명장갑을 끼고 특수보안경을 쓰는 것으로 수술 준비를 마친 볼테르는 사라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먼저 뽑혀나간 왼 허벅지 부품부터 분해하기 시작했다. 녹아서 엉켰거나 들러붙은 부품은 통째로 절단하거나 아예 녹여 흘러내리도록 했다. 기계와 살점이 만나는 부분은 특히 세심하게 다뤘다.

한 방울의 피도 쏟지 않고 수술을 마쳤다.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볼테르는 투명장갑을 벗고 보안경까지 내린 후에야 겨우 미소를 되찾았다. 이중삼중으로 실패에 대비한 경보체계가 갖춰졌지만, 사이보그를 수술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다.

볼테르가 연꽃 문양이 아름다운 얇은 이불을 사라의 목까지 덮어주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려면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볼테르는 수술실 문을 닫고 글라슈트에게 갔다.

"수술은?"

민선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잘 끝났소."

볼테르는 누워 있는 글라슈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민선은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90퍼센트를 넘을까요?"

꺽다리 세렝게티와 뚱보 보르헤스도 궁금한 얼굴로 볼테르를 둘러쌌다.

"기계몸이 많이 상했소. 천연몸도 군데군데 상처가 있고. 1퍼센트는 바꿔야 할 듯하오."

"그럼 88퍼센트로군요. 90퍼센트가 거의 다 되었네."

세렝게티가 긴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2퍼센트 차이를 유지하면서 평생을 보낸 사이보그도 있답니다. 88퍼센트만 되도 희망을 품을 만해요. 하지만 89퍼센트라면, 작은 상처 하나만으로도 90퍼센트에 닿게 되니, 위태위태하지요."

보르헤스가 마른 침을 삼켰다.

"서 트레이너는 일단 결과를 더 지켜보도록 해요. 그건 그렇고 <보노보> 방송국 찰스 사장은 만나보셨는지요?"

민선의 질문을 받은 볼테르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혹시 오늘 약속까지 깨신 건 아니죠? 급한 건 그쪽이 아니라 우리예요. 당장 8강전에 꼭 필요한 부품과 백업 시스템을 구축할 자금도 부족하니까요."

"아까 잠시 나갔다 오셨잖아요?"

"<보노보> 다녀오시는 길 아니셨습니까?"

세렝게티와 보르헤스도 민선의 질문 공세에 합류했다. 볼테르는 여전히 시선을 내린 채 머리를 긁어댔다.

'배틀원 2049'는 특별시나 특정 회사를 대표로 출전할 수 없었다. 상징성을 인정할 경우 재력이 넉넉한 도시와 회사에서 미는 로봇이 우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학교의 지원도 대회 6개월 전에는 중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출전팀은 대회 시작 전 6개월까지 로봇 개발을 완료하고 그 후엔 현상 유지에 주력했다. 민선도 이런 사정을 충분히 글라슈트 팀원 전체에 숙지시켰었다.

더 완벽한 격투기 로봇을 만들겠다는 볼테르의 욕심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난 반 년 동안 새로운 시스템을 다섯 개나 개발 적용하고, 최신 부품도 쉰 개나 직접 만들어 끼우느라 적지 않은 자금이 투여된 것이다. 처음에는 볼테르가 개인적으로 비용을 대다가, 차와 집까지 팔아치운 후로는 팀원 각자에게 부담이 돌아갔다. 사라도 민선도 하다못해 세렝게티와 보르헤스까지 돈을 보탰지만 부족했다.

<보노보> 방송국 사장 찰스를 만나보라고 권한 이는 민선이었다. 방송국으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는 것은 불법이지만, 찰스처럼 로봇 격투기에 관심이 많고 또 특별시에서도 손꼽히는 갑부라면, 금전적인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가르쳐 줄만도 했던 것이다.

"만났어요?"

민선이 다시 물었다. 볼테르가 고개를 들고 좌중을 훑은 후 답했다.

"만나긴 했소. 퉁퉁 투웅 꼬리치는 소리를 한 시간이나 들었다고."

세 사람의 시선이 볼테르에게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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