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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6>죽은 사람도 말을 한다

입력 2012-12-04 03:00업데이트 2012-12-0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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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 칼럼니스트최철주 칼럼니스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죽은 자도 말을 하는 것 같다. 누가 그렇게 할까. 죽은 자들이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CSI과학수사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다. 이 기관의 최고책임자를 지낸 부부가 있다. 10년을 사이에 두고 차례차례로 국과수 원장을 지낸 유영찬, 정희선 부부이다. 이들이 국과수에서 보낸 각각 35년가량의 긴 세월은 죽은 자의 말을 들어보는 시간의 연속이다.

국과수, 변사자의 억울함 밝혀

시체의 언어는 인내와 열정이 깔린 과학적 수사를 통해서만 알아들을 수 있다. 죽은 자의 말을 듣는 데 청춘을 바쳐 온 전 국과수 원장 부부를 만나기 위해 서울 목동에 있는 한 아파트를 찾았다. 과학수사라는 단어가 풍기는 냉정과 치밀함 때문에 그들도 엄청나게 보안 시설이 잘되어 있는 집에서 살겠지 하고 짐작했다. 그런데 현관문의 도어록이 헐렁거리는 것을 보고 상상을 접었다.

두 부부는 오래전에 고장이 나 열쇠 수리공을 부를 참이었는데 게으름을 피웠다고 한다. 지난여름 국과수 원장직에서 퇴임한 정 씨나 훨씬 앞서 물러난 유 씨나 남대문시장에서 마주치는 초로의 아주머니 아저씨처럼 정겹다. 과학수사 책임자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움이나 차가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재를 가득 채운 유기화학, 무기화학 그리고 각종 과학수사 관련 책들이 이들 부부의 경력을 설명하는 자료가 됐을 뿐이다. 현재 한국법과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씨와 한 제약회사의 중앙연구소 소장인 유 씨는 여전히 과거의 업무와 관련된 일에서 몸을 빼지 못하고 있다.

정 씨가 차를 끓여 내오면서 말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몸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걸 우리 수사연구원 직원들이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습니다. 세상에는 늘 많은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죽은 사람의 시체를 보면 겉으로는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일이 많지요. 그때 우리는 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진실을 밝혀서 사망자의 권리를 찾아주려면 그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해요. 인권과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몸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요?

“신생아가 뚜렷한 이유 없이 숨을 거둔 사건이 있었습니다. 4명의 부검의가 한 조가 되어 부검대를 둘러쌌을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여자여서 그런지 몰라도 난 메스를 들고 있는 여성 부검의들의 눈빛을 읽을 수 있어요. 진지하고 단호하고 그러나 따뜻함이 섞여 있어요. 아기 시신을 만지는 그 조심스러움은 사명감의 결정(結晶)입니다. 장기를 조사하고 체내에서 검출된 액체의 성분으로 진실을 알아냈어요. 아기가 억울하다고 말을 한 거지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도 진실이 밝혀져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찾았어요.”

―여성 부검의가 아기 시신을 만질 때는 남성과 다른 감정을 갖게 될까요?

“그들은 아이를 낳는 엄마 또는 예비 엄마이기 때문에 아기 시신을 놓고 범죄와 관련된 어떤 감정이입이 안 되도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아이와 같은 또래의 시신이 들어올 때는 해당 부검의에게 해부를 맡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요.”

―매일 20∼30건의 부검을 하면서 각 시신이 하는 말에 다 귀 기울일 수 있나요?

‘몸의 언어’ 통해 亡者소리 들어

“죽은 자의 인권은 산 자의 인권과 똑같다는 입장에서 해부가 시작됩니다. 시신을 절대로 사건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오로지 과학적 증거를 통해 인권을 찾아줍니다. 체액, 위액, 혈액, 대소변 등을 통해 각종 독성을 밝혀내고 신체에 나타난 상처와 수많은 흔적을 분석합니다.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콧속의 검댕까지 성분을 알아내야 합니다. 유전자 분석은 침해받은 사망자의 권리를 찾는 시간을 줄여 줍니다. 결국 시신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아닌지 스스로 말하게 됩니다.”

남편인 유 전 원장에게는 아내와는 다른 질문을 했다. 죽은 자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느냐고 물었다.

“1987년 오대양 사건에서 발견된 32구의 집단 변시체 가운데 일부는 부검을 통해 혈액검사, 피부조직 검사 등을 했지만 반항 흔적이나 약물 흔적 등이 발견되지 않아 지금도 죽음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건이었지요.”

―1980년대 그 시절에는 변사 사건이 유별나게 많았지요?

“그렇습니다.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어린이 변사 사건이 많아서 어떻게든 억울함을 밝혀냈어야 했어요. 엄마가 회충약 대신 농약을 잘못 먹여 아들 3형제가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고 제사 공장에서 파라치온이 남아 있는 농약 포대에 번데기를 담아 전국 여러 곳에서 판매한 사건도 발생했어요. 이 번데기를 먹은 어린이 30여 명이 전국 여러 곳에서 중독 사망한 사건이지요. 아이의 피부염을 치료한다든가 머리의 이를 잡기 위해 농약을 잘못 바르거나 뿌리는 참 무지한 일들이 벌어졌어요. 그때마다 그 아이들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변사(變死)와 병사(病死)는 한 끗 차이인데 변사자는 수십 배 어렵고 거친 절차를 밟아야 그의 영혼이 겨우 쉴 곳을 찾는군요.

“일단 변사 판정이 내려지면 시신은 경찰을 거쳐 검찰 지휘를 받은 후 국과수의 부검대에 오르게 되지요. 80년대에 투병 중이던 어느 대학교수와 내과 의사인 아내가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런데 인체에 나타난 여러 가지 증거물을 분석한 결과 아내가 남편을 먼저 숨지게 하고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부가 함께 부검 대상이 됐어요.”

―(정 전 원장에게) 죽은 자의 소리를 더 많이 들을 방도는 없나요.

모든 시신들에 존엄 찾아줘야

“있지요. 두메산골 벽지에는 인우(隣友)보증 제도라는 게 있어요. 의사가 없는 곳에서 사람이 죽으면 동네 사람들의 보증만으로 매장할 수 있는 제도인데 이 죽음이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귀찮더라도 가족이 부검 의뢰를 해서 죽은 자의 인권을 지켜 주어야 합니다.”

한 구의 시신에게도 존엄을 찾아주어야 한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래야 한다고 이들 부부는 강조한다.

[채널A 영상] 세계 최대 ‘뇌 은행’ 브레인 뱅크를 가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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