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의 LA리포트]11월7일 美는 누굴 택할까?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8시 54분


볼보와 포르셰가 둘 다 세계적인 명차인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차로 인기가 높은 스웨덴의 볼보가 무난하고 안전하며 고장이 없는 편이지만 다소 진부하다면, 독일의 스포츠카 포르셰는 자극적이고 멋지지만 엔진소리가 시끄럽고 난폭한 느낌에다가 위험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고어-부시 성격-정책 큰 차이▼

얼마 전 한 미국의 정치평론가는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를 이 두 차간의 선택으로 비유한 바 있습니다. 이번 대선의 주요쟁점 중의 하나인 사회보장제도, 즉 소셜 시큐리티와 관련해, 이의 고수를 주장하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안전성을 강조하는 볼보라면, 이를 주식에 투자하고 민영화하려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자극적이지만 위험부담이 있는 포르셰라는 것입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정책 못지 않게, 아니 미국정치에 있어서 어쩌면 정책 이상으로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후보자의 성품이라는 면에서 볼 때, 이 비유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고어 후보가 포르셰에, 부시 후보가 볼보에 가깝습니다. 즉 고어 후보는 지적이고 최첨단을 달리지만 무언가 믿음이 가지 않고 경박하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에 부시 후보는 다소 미련해 보이지만 털털한 게 무난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따라서 정책과 성품을 종합하면, 고어 후보가 정책면에서는 볼보, 성품면에서는 포르셰라면, 부시 후보는 정반대로 정책면에서는 포르셰, 성품면에서는 볼보인 셈입니다.

이제 역사적인 미국 대선은 세 차례의 TV토론을 마치고 결승점을 향한 마지막 피치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는 21세기 세계질서의 틀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21세기 최초의 미국대통령을 뽑는 선거라는 사실을 넘어서 현재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과 관련해 우리로서도 그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어 후보가 당선될 경우 크게 보아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유지해 나가겠지만 훨씬 더 매파라고 할 수 있는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 대북정책에 있어서 클린턴 정부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선거를 전공으로 하는 내로라 하는 미국 최고의 정치학자들은 자신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선거예측모델을 통해 일찍이 이번 대선에서 고어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그 어느 선거보다도 예측이 어렵고 막판까지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막상막하의 선거라는 것이 이곳 선거전문가들의 평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에 따른 미국 국민의 ‘클린턴 피로증상’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던 고어 후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계기로 반전을 기해 부시 후보를 따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논의와 관련, 민주당 의원으로는 가장 먼저 클린턴 비판에 앞장선 조지프 리버맨 상원의원을 부통령으로 지명해 클린턴과 거리를 두는 데 성공하고 초기의 클린턴 선거참모였던 그린버그를 영입해 과거의 보수적 입장에서 다소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즉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미국 유권자의 다수는 대학을 중퇴하고 사무직이나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며 연 수입이 1만5000달러에서 7만5000달러 사이의 백인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이들을 잡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그린버그의 ‘잊혀진 다수’ 이론에 기초해 이번 선거를 세금감면을 통해 소수 부유층을 보호하려는 부시와 다수의 일하는 가족을 대변하는 고어간의 대결로 몰고 간 전략수정이 유효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후보수락 연설 후 고어가 가졌던 부인과의 ‘긴 키스’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막판까지 승부예측 힘들어▼

그러나 고어에 비해 2배의 정치자금을 모금한 부시진영의 TV광고 공세, 그리고 낮은 기대치에 따른 부시 후보의 상대적인 선전과 고어 후보의 전략적 실수로 특징지어지는 TV토론을 거치면서 부시 후보는 고어 후보를 제치고 앞서 나서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갑자기 터져 나온 중동분쟁과 미국함대에 대한 폭탄테러라는 돌발변수로 인해 이번 선거는 막판까지 그 승패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11월 7일, 미국인들이 볼보를 선택할지, 아니면 포르셰를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손호철(서강대 교수·현 UCLA교환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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