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준]분노 과잉… 기득권 줄이고 공정성 높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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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17년 대한민국은 마치 분노의 화약고와 같다. 8일 일을 얻지 못한 40대 일용직 근로자가 아파트 외벽에서 줄에 매달려 일하던 작업자를 시끄럽다고 줄을 끊어 사망케 했다. 13일 공과대학 우수 대학원생이 자신이 만든 사제 폭탄을 이용해 지도교수를 살해하려 했다. 16일 혼자 사는 50대가 인터넷 회선이 느리다는 이유로 수리를 위해 출장 나온 작업자와 다투다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이 사건들은 가해자의 사회적 지위도 다르고 연령과 세대도 다르지만 한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넘치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상대방의 목숨을 앗으려 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우발적 폭행 건수는 2004년 1만810건에서 2014년 7만1036건으로 6.5배가 넘게 늘었다. 또한 지난해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발생한 폭행사건의 15%가 이유가 불분명한 현실 불만이나 우발적 동기에 의한 것이다.


분노는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거나,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이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사건들에서 표출된 분노는 이해나 공감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분노의 극단적 폭발은 왜 최근 들어 이렇게 늘어나는가.

첫째, 분노를 해소하거나 조절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분노와 스트레스를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 혹은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주기적으로 해소한다. 하지만 관계가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들은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채 쌓다가 우연한 계기로 쏟아낸다. 이들에게 분노는 특정 상황에서 나타났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일반화된 감정 상태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어떤 상황도 기폭제가 된다.

둘째, 사회적으로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과 상황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배고픈(hungry) 사회에서 분노한(angry) 사회가 되었다는 전상인 서울대 교수의 진단은 압축적 발전의 부작용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저성장 경제, 승자 독식 사회는 입학 취업 승진 등 인생의 단계마다 엄청난 경쟁 압력을 가한다. 늘 자신보다 잘된 사람과 비교하려는 분위기는 소수의 승리자에게 우월감의 과잉을, 다수의 패배자에게는 열등감의 과잉을 낳는다. 부와 권력의 순서대로 대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모멸감의 낙수효과를 가져온다. 한국 사회에서 분노의 경험은 체계적으로 생산되고 위계적으로 분배된다.

분노의 폭발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유독 빠르게 악화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제 사회적 위험과 폭력으로 인한 사회의 지속가능성 약화를 우려할 때이다.

사회의 구조와 의식을 동시에 바꾸는 대대적 개혁 없이 변화는 어렵다. 기득권의 혜택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려는 정치·경제적 개혁이 시급하다. 강자와 약자의 권력거리가 크고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낮은 한국사회를 수평적이고 공정한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직결되지 않도록 재기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의식적으로는 성공만을 지상의 가치로 보는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자 방식대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서로 아끼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사회 각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모욕과 혐오를 엄중하게 제재하는 제도적, 문화적 변화도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정치권과 경제계, 교육·문화계, 그리고 국민 개개인이 공감하고 협력할 때 가능할 것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분노 과잉#분노 사회#기득권#공정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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