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혜정]좁아진 문호… 트럼프 反이민의 실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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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운동은 계속된다, 그리고 행동은 시작되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 홈페이지에 내건 구호다.

 어떤 운동인가. 민중이 권력을 돌려받고자 하는 역사적 운동이다.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집권이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로부터 미국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어떤 행동인가. 무역, 세금, 이민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노동자와 가정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 우선주의의 행동이다. 안전과 일자리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기성 정치인과 외국의 이중 질곡에 의해 무시되고, 민중의 삶은 법과 질서의 부재로 인한 ‘대학살’과 외국의 ‘유린’으로 망가졌다는 것이다. 왜곡된 기성 질서에 맞서 민중의 잊힌 목소리를 듣고 이들을 구할 이는 누구인가. 트럼프 자신뿐이다.

 반체제, 반패권, 권위주의, 운동권 대통령의 탄생이다. 취임 이후 그는 ‘오바마 케어’ 폐지와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등 논쟁적인 선거 공약들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하층, 인종적·문화적으로는 백인-남성-기독교도, 지역적으로는 내륙의 시골 거주 핵심 지지층의 분노와 절망이 국정 운영의 준거인 것이다.

  ‘분열의 리더십’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논란의 중심엔 지난달 27일 발표된 ‘반테러-이민-난민’ 행정명령이 있다. 정식 명칭이 ‘외국 테러범의 미국 입국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인 이 행정명령은 이란, 이라크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이민을 90일 동안 금지하고, 모든 난민의 입국을 120일 동안(시리아 난민은 무기한)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졸속 시행의 혼란에 그치지 않는다. 이민은 미국의 역사적 정체성의 근원이자 고급 두뇌와 저임금 노동자를 확보하는 주요한 수단이고, 난민은 인권과 국제규범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리더십이 달린 문제이다. 미국에 대한 테러를 이슬람의 산물로만 보지 않는 한, 입국금지 국가를 이슬람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가치가 훼손되었다는 도덕적 비판과 함께 국적 및 종교를 기준으로 한 차별이라는 이유로 법적 소송이 쏟아졌다.

 테러를 방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할 것이란 비판을 받고 있는 이 행정명령의 실무책임자는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븐 배넌이다. 그의 극우 백인 민족주의는 실리콘밸리의 외국 고급 두뇌들이 미국인들의 교육과 일자리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주창한다. 대학들과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이번 행정명령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열광하고 있고 양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은 트럼프의 기세에 눌려 있다. 워싱턴 주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이 이 행정명령의 잠정 중단을 결정했지만 트럼프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법정 공방은 길고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경제적 양극화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백인 인구의 감소 추세는 백인 민족주의의 저항을 동반한다. 미국 우선주의-백인 민족주의-트럼프 권위주의의 역사적 ‘운동’과 그에 따른 미국의 분열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반테러-이민-난민’ 행정명령은 우리에게 어떤 도전인가. 취임사에서 트럼프는 외국의 ‘유린’을 비판하고 미국인 고용과 국산품 구매 원칙을 밝혔다. 불법 체류자의 추방이나 원정출산에서부터 유학과 취업, 이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에 대한 미국의 문호는 좁아질 것이다. 그는 또한 미국의 제도를 강제할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히며 주권과 미국인의 실제 이익을 대외정책의 대원칙으로 천명했다. 우리는 트럼프 미국의 ‘진실’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운동과 행동을 준비할 것인가. 혈맹이나 반제(反帝)의 관성적 논리를 넘어, 이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 한다.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반체제#분열의 리더십#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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