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내가 패륜 살인자인가요?” 대만 사형수가 묻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6일 01시 40분


17년 전 남편-시어머니-친모 살해… 대만 기자가 3년간 면담하며 취재
“남편의 도박과 폭력 때문” 주장… 당시 만연했던 도박 문제도 시사
◇한 여성 살인범의 초상/후무칭 지음·김주희 옮김/436쪽·2만5000원·글항아리

린위루(위쪽 사진)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다룬 2009년 12월 18일자 대만 일간지 ‘롄허보’. 린위루는 남편과 시어머니, 친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대만 기자인 저자는 판결 이면에 다른 진실이 있는지 추적한다. 사진 출처 구글
린위루(위쪽 사진)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다룬 2009년 12월 18일자 대만 일간지 ‘롄허보’. 린위루는 남편과 시어머니, 친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대만 기자인 저자는 판결 이면에 다른 진실이 있는지 추적한다. 사진 출처 구글
2009년 여름, 대만 언론의 중심에는 한 여성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린위루(林於如). 당시 27세였던 그는 시어머니, 남편을 잇달아 독살하고 도박을 위해 거액의 보험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당국은 과거 그의 친모가 낙상으로 숨진 것 역시 린위루의 살인으로 의심했다. 연쇄살인마란 꼬리표가 붙은 당시 그는 그야말로 악독한 여성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통해 린위루는 되묻는다.

“어째서 제가 희대의 패륜 며느리로 불려야 하나요?”

이 책은 대만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2022년 6월부터 3년간 린위루와 면담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집필한 취재기다. 가해자의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논쟁적이고 불편한 책이기도 하다.

린위루는 2013년 6월 사형 판결을 확정받았다. 그를 포함해 대만에서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여성은 단 네 명. 린위루는 20여 년 만에 나온 사례이자, 현재 유일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여성 수감자다. 저자가 그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처음부터 린위루에게 씌워진 도박 중독이란 ‘프레임’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사건 기록을 보면, 린위루는 세 건의 살인 혐의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살해 동기가 보험금이었다는 점만큼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저는 오랫동안 류위항(남편)의 정신적 학대와 폭력에 시달렸다”고 읍소한다. 책은 다소 도발적인 방법으로 그의 주장을 드러낸다. 린위루가 직접 쓴 약 10만 자 분량의 자서전을 상당 부분 실은 것이다.

“의사는 그가 알코올 의존증에 간경화 증상까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도박과 술 둘 다 좋아하니 집안의 나쁜 기질만 물려받은 셈이라고, 이건 완벽한 인과응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또 아들을 빌미로 저를 협박했습니다. (중략) 그때 제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죽여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물론 린위루는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화자가 아니다. 저자 또한 린위루의 증언 중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기 위해 친언니와 변호사, 담당 경찰 등 주변 인물들을 취재했다. 그 결과 부부간 성폭행, 반복되는 남편의 도박 문제 등 린위루의 살인 이면의 문제들을 헤집어 낸다. 더 나아가 당시 대만 사회에 번성했던 도박 문제로까지 시선을 확장한다.

책은 모두가 손가락질했던 살인범의 목소리를 복원함으로써 한 인간의 삶을 단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는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저자조차 때로는 ‘마음을 연 취재원’으로, 또 때로는 ‘교활한 여자’로 린위루를 바라본다. 어디까지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의심해야 할까. 그 혼란스러운 시선을 따라다가 보면 “타인의 인생을 파고드는 일이 마치 한 판의 도박과도 같다”는 저자의 말에 납득하게 된다.

#린위루#대만#연쇄살인#도박중독#사형 판결#정신적 학대#알코올 의존증#가족 폭력#저널리즘 취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