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A~Z]<2>논제 파악이 중요한 이유

  • 입력 2006년 3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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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 파악이 워낙 중요하니 한 번 더 살펴봐야겠습니다. 답안을 쓰는 것은 한편으로는 출제자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논제 파악은 결국 출제자의 말을 듣는 과정에 해당하겠죠. 다른 사람 얘기를 들을 때, 한마디 한마디 세세하게 신경 쓰지 말고 전체 뜻을 간파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한두 마디에 주목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숲 전체를 봐야 할 경우도 있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눈여겨봐야 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겠죠.

구체적으로 말하면 논제에 쓰인 용어 하나하나, 낱말 하나하나 신중하게 따져 보아야 합니다. 사람 사이에 쫀쫀하게 구는 것은 볼썽사나운 짓입니다. 그러나 논제를 파악할 때만은 숨어 있던 온갖 쫀쫀함을 다 동원하여 따져 보아야 합니다. 출제위원들이 용어 하나하나, 낱말 하나하나 다 신중하게 고민하면서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떤 주제를 다뤘나 쓱 보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낱말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합니다. 언젠가 대학입시에 나왔던 문제 하나를 예로 들어 봅시다. “개인들 간의 관계에 관한 예시문의 논지를 활용하여 국가들 간의 관계를 국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당한가에 대하여 구체적 사안을 들어 논술하라.”

자,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접근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성’과 ‘정당성’ 둘 다 논의하는 것입니다. ‘필요하고 정당한가에 대하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필요성 논의만 하고 끝난다든지,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의에서 그치게 되면 논제 파악이 잘못된 셈입니다. ‘필요하고 정당하다’, ‘필요하지만 정당하지 않다’, ‘필요하다 그래서 정당하다’ 등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은 다양하지만 일단 필요성과 정당성, 두 차원을 모두 다 건드려야만 논제 파악이 올바로 된 것입니다.

논제에서 낱말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문제는 더 보여줍니다. 만일 여기서 ‘규제’ 대신에 ‘조정’이라는 약화된 표현을 쓰게 되면 학생들 답안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아마 국제 관계를 규제하는 것에 반대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조정 정도는 가능하다는 사람이 상당수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는 답안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져 찬반으로 나뉘어 논의하는 의미가 퇴색될 것입니다. 그래서 출제자는 찬반 논의가 다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규제’라는 강한 표현을 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다음 두 논제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 지 비교해 봅시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방향을 제시하라.” 두 논제는 낱말 하나 차이(방안-방향)만 있을 따름입니다. 더 정확히는 한 글자만 다릅니다. 그러나 그 한 글자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습니다. 답안으로 요구하는 내용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한 것은 어느 쪽일까요? 그렇죠. ‘방안’을 제시하라는 쪽이겠죠. 방향을 제시하라고 하면 목표만 제시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이 문제의 경우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을 해결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겠죠. 그러나 방안을 제시하라고 하면 이러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까지 제시해야 제격입니다. 그래야만 논제를 올바로 파악한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더 봅시다. ‘제시문을 토대로 하여’와 ‘제시문을 활용하여’를 비교해 볼까요? 논제에 자주 나오는 이런 표현은 제시문에 대한 출제자의 의도를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제시문과 더 밀착해서 논의해야 할 쪽은 어느 쪽일까요? ‘토대로 하여’ 쪽이겠죠. 이 경우에는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간략히 서술하는 부분이 답안 글 어딘가에 들어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논의해야 합니다. ‘활용하여’의 경우 물론 강하게 활용해서 토대로 삼을 수도 있지만, 필요한 내용을 필요한 만큼만 부분적으로 이용해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토대로 하여’라는 요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시문의 핵심 내용을 무시한 채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만 가지고 왈가왈부한다거나, 제시문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이용한다면 그때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 이제 논제가 나오면 다 같이 쫀쫀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합시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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