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5년 소련, 원폭 핵심정보 입수

  • 입력 2008년 10월 18일 02시 56분


‘L P 베리야 동지께, 여기 소련 국가보안인민위원회(NKGB)로부터 받은 첩보 자료를 기초로 한 원자폭탄의 구성에 관한 보고서를 보냅니다. 사본 4개를 만들어 베리야 동지와 NKGB, 그리고….’

1945년 10월, 소련 비밀경찰의 총수 라브렌티 베리야 내무인민위원의 책상에 ‘1급 비밀’이라 찍힌 7쪽짜리 문서가 올라갔다.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의 오른팔인 베리야는 국내 치안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은 물론 각종 대내외 첩보 활동을 총괄했다. 그는 군사기술, 특히 로켓과 원자폭탄 개발 계획도 관장했다.

소련은 이미 1941년부터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원폭 개발 정보를 빼내기 위한 첩보작전(암호명 ‘에노르모스’)을 가동하고 있었다. 소련은 이들 국가에서 활동하는 지역 공산주의자들을 첩보원으로 이용했다.

특히 미국이 1945년 일본에 원폭을 투하해 제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뒤 소련의 조급증은 심해졌다. 하지만 내폭장치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소련 과학자들의 최대 난관이었다.

그 결정적 정보를 제공한 이가 바로 미국의 원폭 개발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클라우스 푹스였다. 독일 출신으로 영국 국적의 핵 과학자 푹스는 전쟁 전 나치에 반대해 지하 저항운동을 했던 공산주의자였다.

1933년 독일을 떠나 스코틀랜드에서 지내던 그는 영국 과학자팀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자발적으로 소련 첩보기관에 수백 쪽의 귀중한 정보를 넘겼다.

푹스의 간첩 행위를 밝혀낸 것은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영국 정보기관 MI5의 합작품이었다. MI5는 소련이 스파이망을 가동하면서 외교 교신을 사용한다는 첩보를 FBI에 전해줬고 FBI는 소련의 암호화된 외교 메시지를 해독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소련은 외교 교신에 사용되는 암호로 4자리 숫자들의 조합을 사용했다. 이 숫자 조합은 단 한 번만 사용하게 돼 있었지만 소련의 암호 작성자들이 과로 탓에 보안규정을 어기고 이를 한 번 이상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의 암호 해독팀은 반복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을 밝혀내 소련의 외교 메시지 상당량을 해독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50년 푹스의 정체도 밝혀졌다.(로드리 제프리스존스의 ‘FBI 시크릿’)

하지만 FBI와 MI5의 개가(凱歌)는 때늦은 것이었다. 소련은 푹스가 넘겨준 정보로 미국의 플루토늄 폭탄과 거의 똑같은 모양의 폭탄을 만들어 1949년 핵실험까지 마친 뒤였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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