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3>건강한 性 활기찬 노년

  • 입력 2003년 1월 16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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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한모씨(60·여)는 10여년 전부터 남편(64)과 전혀 관계를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성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이런 무덤덤한 관계를 청산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침실에서 남편에게 가까이가면 남편은 “왜 이래”하면서 등을 돌린다. ‘황혼(黃昏)의 성(性)’은 남들만의 이야기인지 궁금해하며 참고 지낸다.

회갑을 훨씬 넘긴 정치인 A씨는 지난해 수십년 만에 몽정(夢精)을 경험했다. 정액 속에 피가 섞여 있어 깜짝 놀라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지나친 금욕(禁慾) 때문에 정액이 저장된 곳의 압력이 높아져 미세혈관이 터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내가 자신은 개의치 않으니 남들처럼 밖에서 ‘해결’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많은 노인이 성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다. 부부 사이에 ‘성’이 빠져서 갈등이 빚어지는가 하면 성생활을 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질 않아 고민하는 노인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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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인의 성을 노골적으로 다룬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된 뒤 노인의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아직도 노인의 성욕구와 성생활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사람이 많다.

노인이라고 성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성을 생활의 주요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으며, 왕성한 성생활을 유지하는 노인도 많다.

최근 중앙대 의대 비뇨기과가 실시한 ‘성 인식 및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60세 이상의 노인 76%가 ‘성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선문대 사회복지대학원 연구팀이 한국노년학회 가을학회에서 발표한 ‘유배우자(有配偶者) 노인의 성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의 63%가 배우자와 성생활을 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는 “노인도 신체가 건강하다면 얼마든지 성생활이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많은 사람이 중장년기부터 부부관계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성기능이 약화돼 노령에 장애를 겪는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노인 스스로 신체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도 싹트고 있다.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 교수팀이 성기능 문제로 병원을 찾은 환자를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1985∼94년에는 30대, 20대, 40대, 50대, 60대, 70대 순으로 많았지만 2001년에는 50대, 60대, 40대, 30대, 70대, 20대 순으로 바뀌었다.

김 교수는 “이전까지는 노인들이 성생활에 문제가 있어도 이를 드러내 해결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들의 경우 마땅히 욕구를 풀 상대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성매매를 통해 욕구를 해결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어린이나 장애인 성추행 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한남성과학회 안태영 회장은 “노인의 성은 노인의 행복뿐 아니라 중장년, 어린이 등 모든 연령 및 계층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면서 “자녀들은 부모의 재혼을 적극 권장하고 부모의 성생활이 양지로 올라오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의 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중장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부모의 성에 대해 눈을 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어느 고위직 공무원은 70대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사별하자 몇 년 전부터 몇 달마다 한번씩 아버지에게 ‘소개팅’을 주선해주기도 한다.

안 회장은 “요즈음은 아들과 함께 성기능 장애를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노인도 많다”며 “이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노인 스스로 성에 대한 관념을 개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성기능을 힘과 젊음의 상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런 인식이 황혼의 성생활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 성을 남성 위주로만 생각해 여성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아 나이가 들어 원만한 성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태준 선릉탑비뇨기과 원장은 “지금의 60, 70대 여성은 젊었을 때부터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고 성을 주체적으로 여기지 못한 세대”라면서 “남성 노인은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원장은 “부부간에 직접적인 성관계가 어렵더라도 접촉이나 애무, 키스 등 이른바 ‘대안 성행위’로도 충분히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의 성도 젊은이의 성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근본은 사랑입니다. 서로가 부부애를 갖고 서로를 존중할 때 성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이를 추하게 볼 필요가 있을까요. 누구나 늙습니다.”(안태영 회장)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노년의 性고민과 해소 사례▼

▽사례1〓부동산 임대업자인 김모씨(64)는 지난해 서울 강남에 있는 ‘중년 룸살롱’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곳은 50대 중반 이상만 회원이 될 수 있고 회원이 아니면 입장이 안 된다. 연회비 300만원을 내면 술값이 10% 할인되고 각종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김씨는 2주일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함께 이곳에 들러 30대 초반의 호스티스와 즐긴다.

▽사례2〓대기업을 정년 퇴직한 이모씨(66)는 10여년 전 부인과 사별한 뒤 한동안 성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단골식당에서 ‘길’을 찾았다. 지금도 주로 단골식당에서 ‘홀어미 말벗’을 상대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두세 달마다 단골식당을 바꾼다. 친구들이 농담 삼아 ‘메뚜기’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자신은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라고 받아넘기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사례3〓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신모씨(68)는 50대였을 때 아내가 신체적 이유로 관계를 거부해 그 이후 성관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성에 대해서는 일절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고자(鼓子)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성에 대해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요즈음은 언론 등을 통해 쏟아지는 노인의 성에 관한 정보를 접하면서 혼란스러움까지 느낀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가끔 ‘끓어오르면’ 자위로 해결하곤 한다.


▼전문가 기고▼

8년 전 발기부전 때문에 수술을 받았던 M씨(70)가 기막힌 사연을 전해왔다.

“45세의 젊은 조카가 갑자기 세상을 버렸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 자살할 이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유서를 보니 ‘나 때문에 평생 희생해야 할 집사람을 볼 면목이 없어 먼저 간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M씨 자신은 수술을 통해 발기부전에서 해방됐지만 같은 발기부전이던 M씨의 조카는 이것이 고칠 수 있는 질병임을 모르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M씨는 “내가 발기부전 수술을 받은 사실을 조카가 알지 못했겠지만 고민에 대해 조금만 귀띔해줬어도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성기능 장애는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병이다. 그러나 자랑할 병은 아니지만 창피한 병도 아니다. 세월에 따라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병일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모두 정력이 떨어지고 성기능 장애가 생기는 것으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노년이 되면 비만,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로 인해 성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며 이런 질병이 없으면 노년이라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하다.

따라서 노년기에 발기부전이 생기면 우선 원인이 된 병을 찾아야 한다. 갑자기 성욕이 뚝 떨어지면서 장애가 온 경우엔 뇌하수체 종양, 만성간염 등이 진단되곤 한다.

K씨(60)는 발기력 약화로 병원을 찾았다가 당뇨병 초기임이 밝혀졌고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힘을 회복했다. 혈압이 높은 S씨(62)는 혈압 조절과 함께 한두번의 비아그라 복용으로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고 있다.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는 당뇨병 환자 L씨(61)는 비아그라로는 효과를 못 봤지만 주사요법을 통해 매주 한번씩 부부애를 확인하고 있다. 재혼을 앞둔 J씨(63)는 보형물 삽입 수술로 새 신부를 맞을 준비를 끝내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나이가 들어 성 문제를 얘기하면 주책없는 노인으로 몰리기 쉽지만 성생활은 삶의 질과 정신건강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노인들은 치료가 가능한데도 “자식과 며느리 보기 민망해서…”라며 망설인다.

이들이 자식과 며느리에 떠밀려 병원에 와서 ‘삶의 질’을 되찾고 가족 모두가 화목해지는 흐뭇한 모습을 그려본다. 부모님의 이런 문제까지도 헤아려드릴 수 있다면 참 효자일 것이다.

최형기(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www.ssclin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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