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현장]장애인 지하철 체험 행사

  • 입력 2001년 4월 20일 18시 31분


무려 100여 개의 계단에 리프트는 없는 지하철역. 난생처음 서울 장한평역에 와본 장애인 김모씨는 굴 속 같은 역 입구를 내려다보고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김씨는 설사 리프트가 있다 하더라도 이 역에서는 무서워서 타지 못할 것 같았다. 깍아지는 듯한 경사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한달 평균 5일 남짓밖에 외출을 못하지만 그 5일마저 택시를 이용한다.

☞ [동영상]
장애인 하루 지하철 체험

통계에 따르면 450만 장애인중 1년에 5번도 외출을 못하는 사람이 약 70% 정도. 한달에 5번을 외출하는 김씨는 그래도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실 속에 제21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장애인이 일반인과 같이 지하철역을 체험해보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리프트추락참사 공동대책위 회원 70여명은 이날 서울 장한평역에서 종로3가역까지 일반인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봤다.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0분 정도. 일반인보다 8배가 많은 셈이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시도시철도공사 소속 공익요원 70여 명이 장애인들을 도와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소의 반도 걸리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한 장애인은 "우리가 필요할 때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던 공익요원들이 마침 행사가 있다고 해 와준 것"이라며 신랄하게 꼬집었다.

또다른 장애인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장애인은 지하철을 한번 타는데 무려 40여분을 소비한다"면서 "장애인도 일반인과 같이 소중한 시간을 아껴 쓸 수 있도록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애인들은 지하철에 올라 시민들을 상대로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호소했다. 한 장애인은 "현재 148개의 서울 지하철역 중 40개의 역사에는 장애인을 위한 아무런 시설도 없고 그나마 시설을 갖춘 역의 리프트 장비는 너무 위험해 사용할 수 없다"고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리프트가 설치된 종로3가역에서도 장애인들은 리프트 사용을 거부하고 공익요원들에 의해 역 밖까지 들려나왔다.

이들이 들려나오는 것을 본 한 시민은 "지하철역에 마련된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며 "장애인들을 위한 보다 안전한 시설이 마련되지 않아야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지하철 타기 행사를 마친 장애인들은 탑골공원으로 이동해 장애인 이동권확보를 위한 집회를 벌였다.

집회에 참석한 한 장애인은 "오늘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장애인의 날 행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고위 인사들이 참여하는 행사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장애의 아픔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돼 뜻깊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날 장애인들이 이동권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요구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역은 64개로 서울시 전체 148개 역의 4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안병률/ 동아닷컴기자mok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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