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마을 현장을 가다 2]인도의 실험도시 오로빌 (下)

  • 입력 2002년 7월 9일 20시 42분


오로빌의 정원
오로빌의 정원
인도는 소의 천국이지만 오로빌은 개의 천국이다. 개들은 오가는 스쿠터에 신경쓰지 않고 거리를 쏘다닌다.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는 벤치 아래에도, 심지어는 주차해놓은 차 밑에서도 버젓이 낮잠을 즐긴다. 주인이 있는 개도 있지만 주인없는 개가 더 많다. 그러나 개들은 먹고 잘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안이라는 중년부인이 있기 때문이다. 안의 일은 개들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일이다.

오로빌에 사는 19종의 뱀은 라지브가 돌본다. 러셀스독사와 서스케일독사 그리고 크레이트와 코브라는 독을 품고 있다. 그러나 독사를 봐도 죽이지 않는다. 라지브에게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 라지브는 독사가 나오면 긴급 출동해 잡았다가 다시 놓아준다. 1638명의 주민들은 이처럼 오로빌에 필요한 일들을 스스로 즐기면서 한다.

나무를 돌보는 것은 패트릭의 일이다. 그는 원형 도시의 원주를 이루는 그린벨트에 산다. 패트릭은 강수량이 적어 걱정이다. 비는 연간 130∼135㎜로 우기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때문에 사람들은 지하수를 끌어다 쓰고 있는 데 해가 갈수록 깊이 파야 물이 나온다. 지금은 땅속으로 50m까지 들어갔다. 오로빌은 해발 45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바닷물이 침투할 우려가 있다. 식수나 농경용수로 쓸 수 없다는 얘기다. 패트릭은 “사람들은 교육이나 경제나 명상에만 신경쓰고 물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카리트가 있다. 네덜란드 초등학교 교사출신의 카리트는 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계곡에 물막이댐 32개를 만들었다. 자신의 퇴직금에다 끌어 모은 기금을 모두 댐 건설에 투입했다. 엔지니어들에게 자문하면서 댐건설 공법을 독학했다. 그의 오랜 꿈은 초등학교 건설. 집 근처에 교실 3개를 갖춘 학교건물이 완성돼 가고 있다.

오로빌 주민들의 출신 배경은 다양하다. 크리시나는 인도군에서 소장을 지낸 장군출신. 올해 80세가 넘은 그는 76년 중장 진급을 마다하고 오로빌에 정착했다. 그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문서보관에 관심을 쏟아 문서는 물론 비디오 오디오 자료를 총망라한 기록보관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 인도의 실험도시 오로빌 (上)

컴퓨터 전문가인 울리는 이곳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든 뒤 98년 미국의 SCM에 회사지분을 팔아 100만달러를 오로빌에 기부하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인기 직업은 있다. 축구코치나 교사직을 선호하는 반면 공동체의 행정은 기피한다.

오로빌의 행정과 재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기는 벨기에 사업가 출신이다. 그는 대안기술연구까지 지원하고 있다. 기는 “10세 때 바다를 보면서 지구와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꿨다. 왜 그런 동경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그 꿈이 44세에야 오로빌에서 이뤄졌다. 오로빌은 바로 그런 곳이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것에 대해 그는 “명상과 일은 분리된 게 아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영혼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오로빌 인근 퀼라팔래얌 마을 출신의 인도청년 조티(36)의 사례는 오로빌의 노동관을 잘 나타내준다.

그는 장학금을 얻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노스필드 마운틴 허먼이라는 사립고교를 졸업한 뒤 귀국, 오로빌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인쇄술에 관심을 가졌다. 버려진 인쇄소에서 1년 동안 6가지 기계와 씨름한 끝에 기계를 자신있게 다루게 됐다. 그러나 인쇄에 싫증이 났고 심리학에 마음이 끌렸다. 대학의 성인교육과정에서 3년간 심리학을 공부한 뒤 오로빌의 병원에서 카운슬링을 했다. 그의 취미는 농구. 아이들에게 농구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던 조티는 다시 농구코치 연수과정을 1년 만에 이수, 코치 자격증을 땄고 농구팀을 만들었다.

이 팀을 이끌고 폰디세리주(州) 챔피언전에 출전, 처음엔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오로빌 내 농구팀 수는 6개로 불어났고 소녀팀도 2개나 생겼다. 이 팀들은 지금 모두 주대항 경기에서 우승을 넘보고 있다.

새로운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그는 도시계획위원회에 들어가 오로빌의 지형을 연구하고 지도를 만드는 일을 했다. 컴퓨터를 활용해 복잡한 전화선의 설치지도를 그려냈다. 조티는 “오로빌은 내가 사는 길이며 미래”라고 말했다.

오로빌은 조티의 경우에서처럼 사람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를 주는 곳이다. 대입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났다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교육의 목적이 다르다.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라스트 스쿨(Last School)의 교사 딥티는 “우리는 아무에게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발현하도록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 학급당 학생 수는 15명 안팎. 학비는 무료다. 정해진 교과과정은 없다. 졸업 후 진로는 스스로 선택한다. 오로빌은 직업 현장에서 일을 배울 기회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학교를 나와선 대학에 진학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학부모들은 폰디세리주에 있는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낸다. 교사 매리의 두 아들처럼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같은 명문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아이들도 있다. 첫째 딸 해바라기를 사립학교에 보낸 이현숙씨는 “오로빌의 교육철학을 이해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학업을 뒷받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로빌에서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반면 월급은 생활이 안될 만큼 적다. 교사 월급이 보통 3000∼3500루피(약 7만∼8만원), 병원인 힐링센터 종사자는 4000루피(약 9만원)선. 한 달에 공동체에 내야 하는 돈은 1200루피. 이 돈으론 도저히 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 가서 돈을 벌어온다. 이씨의 남편 이봉은 얼마 전에도 프랑스에 건너가 마사지일로 생활비를 벌어왔다.

대신 하루 노동시간은 다섯시간 정도다. 아열대의 더위에 목이 자주 마르고 쉽게 지치기 때문에 오래 일하기도 어렵다. 나머지 시간은 명상에 바친다. 오후 5시가 되면 거대한 돔 마티르만디르는 명상의 성소로 바뀐다. 돔 안에서 명상하는 동안 내뱉은 기침소리가 마치 총성처럼 울려 퍼질 만큼 고요한 곳이다. 동행한 홍보담당 마우나는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 일러줬다.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지 않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념을 하는 자신을 가만히 지켜본다. 지켜보는 자신이 고양된 의식(high consciousness)이다. 명상할수록 의식은 강해진다. 강해진 의식은 점차 신성을 닮아간다.”

그러나 오로빌은 명상마저 강요하지 않는다. 가끔 전체가 모여 함께 명상할 기회가 있지만 참석 여부는 개인에 달려 있다. 오로빌은 모든 신념과 종교 그리고 국적을 초월, 진보하는 조화와 평화 속에서 세계인이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오로빌리언 되려면…

오로빌 유치원 과정의 한 교실.

오로빌리언이 되는 길은 쉽지만 어렵다.

우선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다. 일단 오로빌에서 3개월을 거주한 뒤 엔트리 그룹에 인터뷰를 신청해야 한다. 인터뷰 결과 계속 거주할 수 있다고 인정되면 한국인의 경우 오로빌에서 한국주재 인도대사관에 추천서를 보내 1년짜리 거주비자를 발급받도록 한다. 그 다음부터는 1년 단위로 비자를 갱신할 때마다 엔트리 그룹의 심사를 받는다. 심사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다. 연령과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없다.

2년을 거주하면 오로빌리언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먼저 1년 비자가 나오면 신입 주민 거주지인 뉴커머 콤플렉스로 옮긴다. 하지만 자리가 쉽게 나지 않기 때문에 하우징 그룹에 미리 알아봐야 하다. 2년이 지나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집터가 따로 없기 때문에 새로 땅을 사서 오로빌 재단에 기부하고 사용허가를 얻어야 한다.(상세한 정보는 www.auroville.org)

오로빌리언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 이곳에서 사는 데 드는 한달 생활비는 4인 가족 기준으로 대략 2만루피(약 50만원) 정도. 전기료와 전화료 부식비 그리고 스쿠터 연료비 의복비 등이다. 교육비는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따로 들지 않는다. 오로빌에서 얻는 소득은 부부가 모두 일해도 1만루피가 안 되기 때문에 매달 생활비를 바깥에서 조달해야 한다. 처음 집을 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진정한 오로빌리언이 되기가 쉽지 않다. 오로빌리언은 사회적 도덕적 문화적 인종적 유전적 차이라는 외견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오로빌이 요구하는 오로빌리언의 첫째 필수 조건. 둘째 조건은 도덕적 사회적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만 에고(자기)와 욕망 그리고 야심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소유의 물질적 개념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것이 셋째 조건이며 넷째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일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식을 물질세계에 투사하지 못하게 되고 의식은 진보하지 못한다. 다섯째는 새로운 인간으로 진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며, 여섯째는 점차 새로운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스스로 신성에 가까워짐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