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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도전해야 청춘이다]<5> 수제 초콜릿 명품브랜드 ‘삐아프’ 고은수 대표

입력 2013-01-18 03:00업데이트 2013-01-1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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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창업 쓴맛 본 수재, 쇼콜라티에 변신해 ‘달콤한 기적’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수제 초콜릿 가게 ‘삐아프’에서 만난 쇼콜라티에 고은수 씨는 직접 빚은 초콜릿을 마치 자식처럼 소중하게 다뤘다. ‘삐아프’란 브랜드명은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이름에서 따온 것.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수제 초콜릿 가게 ‘삐아프’에 들어서자 몇 가지 ‘없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첫째는 초콜릿 진열대의 뚜껑이었다. 쇼콜라티에(초콜릿 장인) 고은수 씨(34)는 “보관하기가 쉽진 않지만 고객들이 초콜릿의 색과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시도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매장에는 테이블도 없었다. “테이블이 생기면 카페처럼 이것저것 상품 구색을 갖춰 놓아야 해요. 저는 온전히 초콜릿으로만 승부를 걸고 싶었습니다.”

대목인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를 앞두고 가게 안에는 활기가 넘쳤다. 고 씨가 매장 안쪽의 주방을 오가는 사이 아내 이홍실 씨(34)는 블로그에 올릴 제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 살배기 둘째 아들은 아빠가 만든 초콜릿을 쪽쪽 빨면서 엄마 아빠 주위를 맴돌았다.

이렇게 소박하지만 달콤한 평화는 사실 도전의 대가다. 유난히 치열하게 살면서 때론 쓴 아픔을 맛보았던 고 씨는 또 다른 도전으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 마음의 병을 얻은 수재

고 씨는 충북 충주의 명문 충주고를 수석 입학해 수석 졸업한 수재였다. 공부만 잘한 것이 아니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집배원 아버지와 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지원해 줄 형편이 못 됐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 그는 넌지시 부모님께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물었다. “미안한데, 돈이 얼마나 드냐?” 그는 존경하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곧바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1998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다. 정확히 뭘 배우는 곳인지도 모르고 한 선택이었다. 당연히 전공이 적성에 잘 맞지 않았다. 그는 학교 수업보다는 직접 결성한 인터넷 소모임에 열정을 쏟았다.

결국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대학 3학년 때 작은 회사를 세웠다. 회사는 가족 간의 경조사를 공유하는 ‘가족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이 돼 본 적이 없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은 실제 고객들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 잘 몰랐다. 4학년까지 학교에 등록하긴 했지만, 학점을 못 채워 제적을 당하고 말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느라 빚이 2억5000만 원까지 불어났다. 그 빚의 무게만큼 마음의 병도 깊어갔다. 다행히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했던 형이 그의 회사를 인수해 줬다. 그 뒤 일에만 매달린 덕에 2006년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러곤 충주고 수석 입학자의 지역방송 인터뷰를 지켜봤다던 아내와 결혼했다.

겉으로는 모든 게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지만 마음의 병은 낫지 않았다. 초년에 산전수전을 다 겪느라 에너지가 소진된 것이었다. 아내에게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다”고 고백했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 ‘317’의 기적을 꿈꾸며

모든 것이 공허했다. 새로운 삶의 목표가 필요했다. 그러다 휴식을 위해 갔던 일본 도쿄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여행 마지막 날, 고 씨는 시간을 때우려고 들른 신주쿠 이세탄백화점에서 프랑스 초콜릿 ‘장폴에뱅’을 처음 만났다. 입안에 넣은 초콜릿 한 알은 맛의 기적을 선사했다. 그는 초콜릿이 자신의 삶을 다시 달콤하게 채워 줄 ‘구세주’임을 직감했다.

한국에서 초콜릿 제조법을 배우다가 프랑스 파리의 요리·제과학교 ‘에콜 르노트르’를 찾아갔다. 3개월 후 귀국해 당장이라도 가게를 차리고 싶었지만 아내가 만류했다. 한 조각에 2000원을 웃도는 수제 초콜릿 시장이 만들어지기엔 아직 국내 상황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 씨는 결국 IT업계로 돌아가 중국 베이징에서 6개월 동안 일했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초콜릿 만들기를 멈출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초콜릿 강의를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 학원에서도 러브콜이 잇따랐다. 이를 계기로 루이뷔통 셀린 랄프로렌 마놀로블라닉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의 VIP파티에 초콜릿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가 깐깐하게 만든 초콜릿 브랜드 ‘삐아프’는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와 조합이 잘 맞았다.

2011년 12월 지금의 자리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감행했다. 살던 집을 전세에서 월세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감이 좋았다. 그가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썼던 삐삐번호 뒷자리는 ‘317’, 첫 창업일은 3월 17일, 아내의 생일도 3월 17일이었다. 서로를 운명이라 여겼던 부부는 매장 앞 도로에 그려진 주차번호 ‘317’을 발견하고 마주 보며 웃었다.

케이터링도 하고, 강의도 하고, 매장에서 직접 판매도 하는 고 씨는 요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할 정도로 바빠졌다. 그러나 큰 욕심을 내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있다. 백화점들의 입점 요청이 이어지고 있지만 백화점이 원하는 이런저런 조건을 맞추려면 스스로 타협점을 찾게 될까 봐 고사하고 있다.

도전 때문에 아팠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 수백 년의 역사가 이어지는 제대로 된 초콜릿 가게를 만드는 새 꿈을 꾸게 된 것도 결국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얻은 소득이기 때문이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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