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는 줄이고, 건강 지키고… 지구-인류를 구할 ‘최적의 한 끼’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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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식단’ 현지화 연구 활발

2017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건강하지 못한 식단으로 사망한 사람이 흡연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는 연구결과가 2018년 5월 의학 학술지 ‘랜싯’에 발표됐다. 같은 해 국제 학술지 ‘랜싯 플래닛’에는 현재 식품 산업 시스템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이처럼 인류의 건강은 물론이고 지구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현대인의 식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2월 16개국의 영양학자, 생태학자, 기타 전문가 37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 ‘이트-랜싯(EAT―Lancet)위원회’는 인류의 영양과 지구 환경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식단 변화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공개하고 표준화된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 식단’을 내놨다. 식단 공개 이후 과학자들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최근 들어 지역 특성에 맞게 개선된 식단을 찾기 위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인류와 지구 건강 동시에 개선하는 ‘인류세 식단’


전 세계 과체중 또는 비만 인구는 20억 명 이상으로 대다수 서구권 국가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충분한 칼로리나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인구도 8억1100만 명에 달한다. 2018년 랜싯 플래닛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식품 산업 시스템은 담수의 70%와 토지의 40%를 쓰며 강과 해안을 오염시키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2010년부터 2050년까지 전 세계 도시화와 인구 증가로 식품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80%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2014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트-랜싯위원회가 제시한 해결책인 인류세 식단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식단 가이드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인류세란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으로 인간 활동으로 지구환경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를 분리하기 위해 제안됐다. 위원회는 탄소 배출과 생물다양성 손실, 담수·토지의 활용, 비료나 사료로 쓰이는 질소·인 활용 등 다양한 환경 변수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을 고려해 식단을 구성했다.

인류세 식단에서 평균 체중의 30세가 하루에 2500Cal를 섭취할 때 일주일에 허용되는 붉은 육류는 최대 100g이다. 이는 미국인이 소비하는 붉은 육류량의 4분의 1에 못 미친다. 냉동식품이나 가공육류, 설탕, 지방 등 대부분도 섭취 대상에 제외된다.

당시 위원회는 “인류세 식단으로 매년 약 1100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팀 랭 이트-랜싯위원회 보고서 공동 저자 겸 영국 런던시립대 식품정책연구원은 “생태계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도 100억 명의 사람들을 건강하게 먹일 수 있는 식단”이라고 설명했다.

○중·저소득 국가와는 먼 얘기… 지역 맞춤형 식단 찾아라


문제는 식단을 선택적으로 구성하기 어려운 중·저소득 국가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인류세 식단을 적용하기도 어렵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인류세 식단을 분석한 타이 빌 미국 워싱턴 ‘영양개선을 위한 글로벌 얼라이언스’ 연구원은 “25세 이상에게 권장되는 아연 섭취량의 78%, 칼슘 섭취량의 86%만 제공하고 가임기 여성에게 요구되는 철분 섭취량의 55%에 그친다”고 밝혔다. 공중보건 과학자들과 영양학자들은 인류세 식단을 업그레이드해 전 세계 인류에게 현실적인 식단을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소재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영약학자인 퍼트리샤 유스타치오 콜롬보 박사 연구팀은 학교에서 지속가능한 식단을 테스트하고 있다. 연구팀은 약 2000명의 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 급식을 분석하고 기존 스튜에서 고기 양을 줄이고 콩과 야채를 더 추가해 영양소가 많고 환경친화적인 스튜로 바꿨다. 학부모와 학생은 급식이 개선됐다는 정보만 알고 상세한 사항은 알지 못하도록 했다.

연구진은 “대다수 아이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고 음식물 쓰레기도 확연히 줄어들어 고무적”이라고 밝혔다. 콜롬보 박사는 “학교 급식은 지속가능한 식습관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어렸을 때 식습관이 성인이 돼도 대체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장기간 추적 연구를 통해 현지 사정에 맞는 인류세 식단을 조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문을 닫은 외식업체와 레스토랑 간 협업을 통해 이트―랜싯위원회의 인류세 식단에 기반한 무료 식사를 지난해부터 제공하기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 중인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242명 중 93%가 음식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무료 식사를 제공받은 사람들의 영양 상태를 추적 연구해 개선된 인류세 식단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는 인류세 식단 보고서를 다시 평가하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통할 수 있는 식단을 찾아내기 위한 위원회를 최근 새롭게 구성했다. 중·저소득 국가에서 지속 가능한 식단을 찾기 위해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고 2024년까지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인류세 식단#탄소#건강#현지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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