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마라톤 ‘트레일러닝’, 코로나 시대 최고의 운동”[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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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오르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오르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올해로 환갑을 넘긴 김동해 씨(61)는 무등산 달리는 재미에 빠져 있는 트레일러닝(산악마라톤) 마니아다. 1999년 마라톤에 입문한 뒤부터 산을 달리며 심폐 지구력과 체력을 키웠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창궐 이후에는 면역력을 키우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다.

“제가 사는 광주에서 무등산은 저의 힐링 장소입니다. 매주 2회 이상 무등산에 올라 20km 정도를 달립니다. 5시간 안팎 산을 달리다보면 몸에 에너지가 넘치고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이 코로나19 시대 최고의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전 코로나19가 무섭지 않아요. 코로나19는 산을 못 올라옵니다. 코로나19가 밀폐된 곳, 지하에서 힘을 발휘할지 몰라도 야외에선 맥을 못 춥니다. 산을 달리는 사람 치고 아픈 사람 있나요? 운동하면 면역력이 좋아지잖아요. 체력은 물론 정신력도 좋은데 어떻게 코로나19가 산에 오르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김동해 씨는 일찍 산 정상에 올라 해가 뜨는 광경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어떨 땐 발 밑에 구름물결이 넘실 대 가슴이 벅차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는 일찍 산 정상에 올라 해가 뜨는 광경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크다고 했다. 어떨 땐 발 밑에 구름물결이 넘실 대 가슴이 벅차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김 씨는 산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는다고 했다. 선물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에너지도 받고 아름다운 비경도 볼 수 있고, 스트레스 날릴 기회도 갖는다고. 달릴 때마다 새롭다고 했다. 그는 주로 새벽에 산을 달린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산을 타기 시작해야 자신의 에너지도 분출하고 산의 신선한 기운도 받을 수 있단다. 빨리 올라가서 산을 지배해야 좋은 광경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산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해가 떠오르는 광경 본 적이 있나요?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어떨 땐 온 천지가 눈꽃으로 덮여 있고 구름바다로 넘칠 때도 있죠. 다시 달릴 때 제 발 아래서 구름이 출렁거릴 땐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김 씨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로 동료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산에 오른 게 계기가 마라톤에 입문했다.

“제가 불혹의 나이가 돼 가던 시기에 동료들이 구조 조정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은 자의 미안함이라고 할까요. 심적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무턱대고 뒷동산에 올라 달렸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날아갔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다 벤치에 누가 보다 두고 간 신문이 있었는데 ‘여러분도 인간 한계에 도전해보세요’란 문구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서울 한강변에서 열리는 서울마라톤 소개 기사였습니다. 그래 이거다 하며 신문을 오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1998년 겨울이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마라톤의 ‘마’자도 몰랐다. 그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떨쳐내고 3명의 아빠인 가장으로서 흔들림 없이 나가려면 체력과 정신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 초등학교 운동장을 60바퀴 달리는데 자꾸 중간에 까먹어 콩 60개를 볶아 한바퀴 돌 때마다 하나 씩 먹으며 달렸어요. 뭐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무턱대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1999년 3월 제2회 서울마라톤에 출전했다. 42.195km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3시간35분에 완주했다. 첫 도전치고는 아주 좋은 기록이다. 이 때부터 물 만난 고기마냥 마라톤대회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2시간 45분대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는 마스터스마라토너들에겐 꿈의 기록이다. 이듬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47분대, 한 달 뒤 함평나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48분대로 남자부 정상에 올랐다.

“마라톤 풀코스 2시간30분대 기록을 세워보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어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누가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 재밌을 것 같아 바로 시작했죠.”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질주하고 있다. 그는 산을 달릴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산을 질주하고 있다. 그는 산을 달릴 때 가장 즐겁다고 했다. 김동해 씨 제공.
2005년 8월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금강산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출전했다. 철인3종을 시작해 처음 출전한 대회였다.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만 열린 대회에서 2시간40분대로 완주했다. 그는 “해금강에서 수영하고 외금강 김정숙 별장 앞을 자전거 타고 달렸죠. 우리를 지키는 인민군들이 갤러리였습니다. 잊을 수 없는 대회”라고 회상했다. 돌아와서 얼마 안 돼 제주도 트라이애슬론 철인코스(수영 3.3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에 출전해 12시간 12분에 완주했다. 거칠게 없었다. 영락없는 ‘철인’이었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울트라마라톤도 병행했다. 2001년 9월 제1회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311km를 완주했다. 2008년 성지순례울트라마라톤 111km에선 우승도 했다. 2000년 중반쯤 트레일러닝 붐을 일면서는 트레일러닝 대회에 집중했다.

“평소 산을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있는데 트레일러닝 대회가 생겼습니다. 딱 저를 위한 대회 같았습니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트랙에서 훈련할 때 전 산에서 훈련했으니 저에게 안성맞춤 대회였죠.”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출전해 모래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출전해 모래언덕을 질주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참가해 모래언덕을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참가해 모래언덕을 오른 뒤 포효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국내 트레일러닝대회는 거의 다 출전했다. 한 대회 우승 상품으로 2015년 인도양 프랑스령 레이뇽에서 열린 트레일러닝대회 164km 등 해외 대회에도 출전했다. 2016년 5월에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7km에서 7시간35분으로 국내 최고기록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2017년엔 고비사막마라톤 225km, 2018년엔 핀란드 국토종단 225km를 완주했다. 가장 최근엔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1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128km 트레일러닝을 다녀왔다.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가 한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김동해 씨 제공.
환갑을 넘겼어도 웬만한 젊은이들보다 잘 달린다. 5년 전부터는 20대에서 40대 달림이들에게 산을 잘 다리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 여자 제자 중에서 지난해 화대종주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이론보다 실전에 강하다. 산을 함께 달리며 노하우를 전수한다. 산을 잘 달리는 법은 무엇일까?

“트레일러닝에서는 오르막을 잘 공략해야 합니다. 근성이 중요하죠. 언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언덕을 만나면 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고 걸으려고 하죠. 힘들다고 미리 선을 긋는데 언덕을 잘 달려야 기록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힘들 때 일수록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도전해야 합니다. 전 오르막 훈련에 시간을 많이 할애 합니다. 내리막은 몸을 풀고 가는 구간에 불과합니다.”

김 씨는 천천히 달려도 힘드니 가급적 빨리 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30분에 달리는 것보다 5시간에 달리는 게 더 힘듭니다. 오르막을 만났다고 겁먹으면 몸이 무거워집니다. 가파른 오르막이라면 두 팔까지 활용해 네 발로 고릴라 주법으로 올라야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김동해 씨는 산을 달리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는 산을 달리며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김동해 씨 제공.
20년 넘게 달렸지만 단 한번의 부상도 입지 않았다. 무릎도 생생하다. 그는 “돌부리, 나무부리에 걸려 넘어져 찰과상을 입은 적은 있지만 발목이나 무릎을 다치는 중상을 입은 적은 없다”고 했다. 마라톤 하면서 근육 쏠림 현상으로 통증을 느낀 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코어 근육을 강화한 게 부상을 막았다. 주 5회 이상 근육운동으로 전신의 근육을 고르게 키우고 있다. 그는 “코어를 강화하면 힘든 순간에도 힘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김 씨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리스트)도 하나 씩 이뤄하고 있다. 2019년엔 킬리만자로 정상을 찍었다. 올해가 정년의 해라고 한다. 그는 “솔직히 다양한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헬스클럽에서도 몸이 좋다고 평가합니다. 은퇴한 뒤에는 실버 몸짱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게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입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 완주도 목표다 UTMB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UTMB에 가려면 각종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따야 한다. 그는 “지금 코로나 때문에 포인트를 못 쌓고 있어요. 모든 게 정상화 되면 당장 포인트를 쌓아 UTMB로 향할 겁니다”며 웃었다.

김동해 씨에게 산은 에너지를 얻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힐링 공간이다. 김동해 씨 제공.
김동해 씨에게 산은 에너지를 얻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힐링 공간이다. 김동해 씨 제공.
그는 평생 산을 달릴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모토는 ‘한계를 만날 때까지 한계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한계를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계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살면서 약간의 좌절은 있었지만 또 다른 도전의 자극제였을 뿐이다. 그에게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다. 그 삶의 중심에 트레일러닝이 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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