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GEM… 몸값 940만원이랍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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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유전체 99% 같아… 노화-질병 연구 실험용으로 세계 100대 약품 ‘일등공신’
한국도 ‘GEM분석사업단’ 발족`

성제경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장이 특정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킨 유전자변형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 제공
성제경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장이 특정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킨 유전자변형쥐를 들어 보이고 있다.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 제공
찍찍, 나는 생쥐다. 정확히 말하면 유전자변형쥐(GEM). 부모가 누군지는 모른다. 실험실에서 만든 수정란에서 태어났다고만 할 뿐. 내 이름은 1, 2, 3 이런 숫자로만 존재한다. 대신 연구원들은 나를 ‘슈워제네거’라고 부른다. 불룩불룩한 근육 때문인데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없어서 그렇단다. 사람들은 일주일마다 내가 사다리를 얼마나 잘 올라가는지, 앞발로 버티는 힘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한다.

이곳 친구들은 저마다 유전자가 하나씩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페드린’ 유전자가 없어서 냄새를 맡지 못하는 친구도 있고, 앞이 안 보이거나 귀가 먼 친구도 있다.

우리 모습을 보며 너무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도 나이가 들면 뇌에 이상이 생기고 근력이 약해지는 노화가 일어난다. 사람과 비슷하다. 유전체는 99%가 동일하다. 그래서 유전자 때문에 생기는 병도 비슷하다. 2년밖에 안 되는 수명은 사람에 비해 무척 짧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덕분에 사람은 우리를 연구하고 그 결과에 의지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00대 약이 모두 우리 덕분에 나왔다. 2007년 노벨 생리학상도 우리를 처음 만든 과학자들이 받았다.

초파리나 제브라피시 같은 실험동물도 많은데 굳이 왜 우리냐고?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 지는 다른 동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드는 과정과 병의 증세까지 볼 수 있는 동물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 몸값이 엄청 비싼 친구도 있다. 일본 출신의 ‘폴리오바이러스 리셉터’는 몸값이 940만 원이나 된다. 이 녀석의 쌍둥이들은 매년 2만 마리가 태어난다.

한동안 세계는 나 같은 GEM을 다양하게 만드는 데 전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캐나다는 각각 GEM을 만들면서 서로의 자원을 공유했다. 그동안 GEM 한 종류를 만드는 데 1년 넘게 걸렸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1∼4개월이면 나 같은 GEM이 태어난다. 그러다 보니 이젠 GEM을 만드는 것보다 GEM의 표현형을 분석하려고 한다. 내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확인하려는 거다.

2012년에는 아예 ‘국제마우스표현형컨소시엄(IMPC)’이 생겼다. 사람의 유전자가 2만2000개이니 유전자를 하나씩 없앤 내 친구들도 2만2000마리를 만들어 사람의 질병 지도를 만들겠다는 거다. 그동안 IMPC의 내 친구들은 미국과 유럽 출신이 가장 많았다. 일본과 중국 출신도 꽤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출신 친구들이 새로 모임에 들어왔다. 이 친구들의 ‘아빠’는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 교수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KMPC)’을 만들어 2022년까지 총 17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단다.

한국이 이 모임에 들어온 건 잘된 일이다. 사실 이 모임의 가입 조건이 좀 까다롭다. 1년에 우리를 50종류 이상 만들고 표현형까지 분석할 능력이 돼야 한다. 한국은 1년에 우리를 2종류 이상 만들고 분석할 여건이 되는 곳이 7군데 정도다. 이 조건만 따지면 우리 회원이 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 기발한 제안을 해왔다. 내 친구를 20종류만 만드는 대신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과 운동 능력의 변화를 정확하게 분석해 다른 나라의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 대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친구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한국 친구들이 새로 가입했으니 조만간 ‘IMPC 비정상회담’을 한 번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GEM#유전체#노화#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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