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일등석에 탄 남녀 7명은 한 꿈을 같이 꾸게 하는 ‘드림머신’에 연결된 뒤 모두 안대로 눈을 가린다. 그리고 ‘꿈속의 꿈속의 꿈’을 꾸기 위해 깊은 잠에 빠져든다.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해 생각을 훔치거나 심는 얘기를 그린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이다. 드림머신 자체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나 모두가 안대로 눈을 가리는 방법은 꽤 설득력이 있다. 누군가의 눈꺼풀 위로 빛이 비치면 몸 안의 생체시계가 재설정돼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칫 꿈속에서 다른 속도로 움직이거나 일시적으로 송수신이 지연되는 ‘래그(lag)’ 같은 끊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영화처럼 꿈속의 시간이 현실보다 20배 길다면 약간의 시간 오차는 ‘작전’ 전체를 실패로 돌릴 수 있다.》 ○ 빛 이용해 생체시계 동기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생체시계는 체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주 역할을 하는 부위는 뇌 시상하부에 있는 ‘시신경 교차 상핵(SCN)’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는 “시신경이 교차하는 SCN에는 신경세포 2만 개가 각각 세포시계의 역할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인지한다”고 설명했다. SCN은 빛 같은 외부 자극이 없을 때 하루를 24.5시간으로 계산한다. 어둠 속에서 지낸다면 매일 30분씩 시간이 느려지는 셈이다.
하지만 빛을 보면 생체시계가 재설정되며 실제 시간과 동조된다. 빛은 눈을 감고 있어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잠자는 동안에도 눈꺼풀에 빛이 비치면 생체시계는 재설정된다. 영화처럼 다른 사람과 같은 꿈을 꾸려면 빛의 간섭을 똑같이 받는 환경이 필요하다.
드림머신을 이용할 때는 사용자끼리 식사 시간을 일치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생체시계는 음식을 먹은 뒤 진행되는 소화 작용 같은 물질대사에도 영향을 받는다. KAIST 생명과학과 최준호 교수는 “빛을 차단한 환경에서 공복 상태의 초파리와 먹이를 섭취한 초파리의 생체시계 흐름은 서로 달랐다”며 “아직 정확한 작동원리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물질대사나 체온변화도 생체시계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빛쬐면 시간흐름 달라져 같이 안대써야,생체시계 유지위해 식사 시간도 맞춰야,시차 다르면 시간 뒤죽박죽돼 오류 발생 ○ 시차 완벽 적응하려면 1시간에 하루 걸려
영화에서는 드림머신을 이용해 아무 때나 꿈을 꾸도록 설정했다. 그런데 꿈의 내용에 따라서 ‘낮’, ‘밤’을 고려한다면 꿈을 보다 쉽게 만들 수 있다. 몸의 생리작용을 조절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은 일정한 주기를 갖고 분비되기 때문이다.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김양인 교수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르티솔과 노르에피네프린은 아침에는 분비가 많지만 저녁부터는 양이 줄어든다”며 “두 호르몬은 심박수를 빠르게 하고 뇌를 깨어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처럼 목숨을 건 긴박한 모험이 필요한 꿈을 꿔야 한다면 두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낮이 적당할 수 있다. 물론 깨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만약 시차가 바뀌는 장거리 여행 뒤 바로 드림머신을 사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가 다같이 이동한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은 현지에서 합류했다면 시간이 뒤죽박죽돼 오류가 일어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낮밤에 적응하더라도 이는 수면-각성 리듬이 맞춰진 것일 뿐 모든 리듬이 돌아온 것은 아니다”라며 “생체시계가 시차에 적응하려면 시간당 하루는 족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7시간 시차가 나는 거리를 이동했다면 최소 일주일 뒤에 드림머신을 사용해야 오차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드림머신::
여러 사람이 같은 꿈을 꾸게 만드는 영화 속 장치. 접속한 사람들에게 약물을 주입해 깊은 꿈을 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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