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다수결 투표'속의 함정

  • 입력 2002년 11월 19일 17시 22분


선거의 계절이다. 대통령, 국회의원, 반장 선거 등 모든 투표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게 ‘다수결’이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당선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특히 후보가 난립했을 때는 다수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역설적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슬아슬했던 2년 전 미국 대선에서 녹색당 랠프 네이더 후보는 플로리다주에서 9만5000표를 얻어 승부를 갈랐다. 대부분의 네이더 추종자들은 차순위로 고어를 지지했지만 거꾸로 부시를 당선시키는 역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수학자들은 역설적 결과가 나올 확률이 적고 투표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결선투표제’ ‘보다산출법’ ‘찬성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투표방식은 프랑스 혁명 직후 콩도세, 보다 등 수학자가 제안한 것이다.

15명이 후보 3명을 놓고 반장 선거를 했다. 6명은 똘이-순이-영희 순서로, 5명은 영희-순이-똘이, 4명은 순이-영희-똘이 순으로 꼽았다. 다수결로 하면 6명이 1순위로 꼽은 똘이가 반장이다. 하지만 결선투표를 하면 1,2위인 똘이와 영희가 결선에서 맞붙게 되고 영희가 9표를 얻어 최종승자가 된다. 1순위에 2점, 2순위 1점, 3순위에 0점을 주는 보다산출법을 적용하면 순이가 1등이다.

수학자들은 순이가 진짜 민의를 반영한 반장이라고 믿는다. 캘리포니아대 수학자 도널드 사리 교수는 후보가 6명이라고 가정하고 카오스이론으로 분석한 결과 다수결이 역설적 결과를 낳을 확률은 보다 산출법에 비해 무려 1050배나 높았다. 보다산출법은 대학, 스포츠팀 랭킹 평가나 수상자 선정 때 많이 쓰인다.

찬성하는 모든 후보에 표를 던지는 찬성투표제는 87년부터 미국 과학기술계에 도입됐다. 찬성 투표제는 투표가 간단하고 한번에 선거를 끝낼 수 있어 전기전자공학회(IEEE), 미국수학회, 미국통계협회 회원 60만명이 회장을 뽑을 때 쓴다. 유엔 사무총장도 찬성 투표로 뽑는다.

수학자들은 보다산출법이나 찬성투표제가 가장 좋은 투표방식이라고 믿지만 결선투표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프랑스 러시아 등은 적어도 50%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도록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는 36∼42%의 낮은 득표율로 당선된 ‘절름발이 대통령’이었다. 특정 지역의 맹주가 돼 다수결로 이기기만 하면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 없이도 권좌에 오를 수 있는 다수결이 바람직한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결선 투표제에서는 인물도 중요하지만 정당간의 연대에 성공해야 대통령이 되므로 상대방 헐뜯기보다 정책 대결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 연임제 도입에는 개헌이 필요하지만, 결선투표제 도입은 선거법만 바꾸면 된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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