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공계열 현주소]교수 재임용 탈락 거의 없어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9시 09분


“국내 대학의 학과장은 사역병이나 다름없습니다. 연구는 제껴놓고 잡일을 해야 하니까 대부분의 교수들이 서로 안 하려고 기피하지요. 그러다 보니 나이 순서대로 1년씩 돌아가면서 학과장을 맡습니다.”

30대 중반에 지방국립대 기계과 학과장을 맡은 한 교수의 푸념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교수의 승진, 재계약은 힘센 고참 교수들이 대학의 교무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는 “과학기술이 하루가 달리 급변하고 있는데도 고참 교수들의 입김 때문에 전망이 없는 분야에 계속 얽매여 있는 게 답답하다”고 털어놓는다.

정부가 이공계 대학을 중심으로 대학의 개혁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대학 개혁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개혁의 구호는 요란하지만 선진국의 대학에서처럼 ‘악역’을 마다하지 않고 개혁의 사령탑 역할을 할 학과장이 우리나라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다.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등 유럽 대학에서도 학과장은 최소한 임기가 5년이고, 총장이 학과의 운영에 대해 전적인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다. 반면 한국 대학의 학과장은 임기가 1∼2년이다. 또 학과의 인사, 재정, 교수 재임용 등에 대해 권한이 거의 없다.

대학이 고참 교수들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니, 교수들에 대한 연구 업적 평가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 MIT 등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 일류대학에서는 학과장이 조교수를 정교수로 승진시키는 비율이 3명 중 한 명 꼴이다.

하지만 국내 명문 대학에서는 전체 학과를 통틀어 1년에 한 명 정도가 재임용에서 탈락되고, 그나마 탈락을 둘러싼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의 경우 몇 개의 과를 통합해 학부가 만들어지면서 학부장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각 대학에서 정부 연구비의 배분권을 가진 BK21 사업단장이 학과장을 겸직하는 경우도 많아져, 학과장에게 조금씩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올해 물리학부장을 맡은 서울대 김두철 교수는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우리도 미국식 학과장 개념을 따라가려 하고는 있지만, 학부장이 뜻을 펴기 위해서는 아직도 제약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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