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文化]시드니, 천재가 되고 싶다

  • 입력 2000년 8월 6일 18시 25분


김형찬〓시드니의 IQ는 얼마나 될까요? 디지털 생 명이라면 죽지도 않을 테고 학습한 것을 메모리 에 무한정 기억을 시킬 수 있을 테니 IQ도 대단 히 높겠군요?

윤송이〓메모리 용량에도 한계는 있으니까 모든 것 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기억 못지않 게 망각도 중요하고 어떻게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가도 중요해요.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 은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예요. 붕어는 3초밖에 기억을 못한다는 이야 기도 들은 것 같아요.

김〓3초요? 아무리 머리가 나빠도 그렇지, 3초의 기억력으로 살아갈 수 있나요?

윤〓실제로 살아가는 데 기억력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면 될 거예요.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 기라면 ‘어둡고 파란 것은 좋다’는 정도의 기억 만 하고 있으면 될 거예요. 그 물고기는 항상 그 런 곳에서만 태어나고 그 곳에서만 살다가 죽을 테니까 특별히 새로운 것을 기억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꼭 필요한 것은 DNA에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요. 많은 생물들은 특정한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기에 알맞게 기억하도록 돼 있어요. 그런 데 사람들은 한 곳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 한 조건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죠. 그래서 선천적 으로 기억하는 것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새로 기 억해 가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돼 있지요. 다양 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것만 DN A에 프로그래밍돼 있는 거예요.

김〓인간은 후천적으로 많은 것을 익히면서 살아가 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이 한 정된 기억력을 학습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예컨대 불쾌하고 나쁜 기억은 선별적 으로 지워버려서 메모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꼭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은 잊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윤〓기억의 종류부터 설명해야겠군요. 기억에는 단 기 중기 장기 메모리가 있어요. 얼마나 오래 기 억하는가에 따라 나뉘는 것인데, 만들려는 캐릭 터의 특성과 그 환경에 따라 이 세 종류의 메모 리를 적절하게 배분해야 돼요. 기억할 것을 선택 하는 것도 이에 따라 달라지지요.

김〓기왕이면 장기메모리를 많이 갖도록 해야 좋겠 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장기메모리로 기억되 죠?

윤〓장기메모리만 좋은 것은 아니예요. 잠시 기억 하다 잊어야 할 것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오래 기억하려면 감성적으로 큰 자극을 받아야 돼요. “앉아”라고 말하고는 시드니가 앉는 동작을 할 때마다 과자를 한 개씩 주면 시드니는 앉으라는 말과 동작을 과자와 연관시켜 기억해요. 그런데 100번쯤 앉으라고 시키면서도 과자를 안 주면 나 중에는 앉으라고 해도 안 앉지요. 그런데 한 번 앉으라고 하고 따라할 때 과자 한 박스를 주면 감성에 큰 자극을 받아서 100번쯤 과자를 안 주 고 앉으라고 해도 앉지요. 이것을 도박의 심리현 상(Jack potting phenomenon)이라고 해요. 도 박에서 한 번 돈을 따면 다시 따기를 기대하며 확률을 무시하고 계속 돈을 거는 것이 바로 이런 심리죠.

김〓그렇다면 장기메모리를 이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겠군요. 강한 자극을 계속 받고 있을 수는 없 을 테니까요. 그런데 기억은 단순히 학습의 문제 에 한정되지는 않을 거예요. 기억은 곧 그 생명 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죠. 태어나서 타자나 환 경과 관계를 맺으며 학습하고 기억한 것이 그 사 람의 존재를 규정하죠. 예컨대 한국인으로 태어 나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라나면서 ‘한국인’이란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죠. 그래서 기억상실증과 같은 심각한 망각은 때로는 정체성의 파괴와 같 은 정도의 두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하지요.

윤〓기억력이 얼마나 오래 가는가에 따라 정체성도 달라질 거예요. 3초의 단기 메모리밖에 없는 생 물이라면 그 정체성은 3초 동안 형성되겠지만 인 간처럼 수십년씩 가는 장기 메모리를 가졌다면 그 정체성도 수십년의 기억이 축적되며 정체성을 형성하겠죠.

김〓디지털 생명의 경우에 학습된 기억을 다른 디 지털 생명에게 그대로 전해줄 수 있다는 점을 고 려한다면 그 정체성은 수백, 수천년의 축적일 수 있겠군요. 이전 세대의 학습 내용을 다음 세대에 자연적으로 전수받지 못하는 인간보다 진화도 훨 씬 빠를 것이구요. 이런 디지털 생명이라면 겨우 백년쯤 살면서 수십년의 정체성밖에 가지지 못하 는 데다 태어난 지 십여년 동안이나 교육을 받아 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들을 우습게 볼 수도 있 겠죠. 그렇다면 머지않아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간을 지배하는 디지털 생명이 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디스토피아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지요.

윤〓단지 능력만 뛰어나다고 다른 종족을 지배하게 되는 것은 아니예요. 지배할 능력과 욕망이 있다 고 해도 환경에 따라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진화 에 ‘필요’할 경우에만 지배를 하는 것이지요. 진 화에 필요하지 않다면 그런 욕망을 추구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도태되고 말거예요.

김〓자연과 다른 생명들을 다 파괴하면서라도 욕망 을 채워 온 인간의 행적을 생각해 본다면 디지털 생명이 자신의 진화를 위해 인간을 통제할 필요 를 느끼게 될 가능성은 충분하리란 생각이 드는 군요.

<정리〓홍호표부국장대우문화부장>hphong@donga.com

■단기 중기 장기 메모리(short term, intermediate term, long term memory)

기억을 구성하는 세 방식. 단기 메모리는 짧은 시간 동안의 기억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 번 듣고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화번호가 6∼8자리인 것은 단기메모리의 용량이 ‘6±2’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잘하는 사람은 8자리까지 기억하고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은 4자리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기억하는 것은 중기메모리이고, 몇 년 혹은 몇 십년 동안 기억하는 것은 장기 메모리다. 진화는 단기 중기 장기메모리의 순서다.

■디스토피아(Distopia)

현대인들은 16세기 초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Utopia)’의 휴머니즘과 17세기 초 프랜시스 베이컨이 쓴 ‘새로운 아틀랜티스’의 과학기술주의가 결합된 이상향을 꿈꾼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사회와 과학기술이 발전한 결과 과학기술을 장악한 독재권력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이런 부정적 이상향을 ‘디스토피아’라 한다. 1999년 개봉됐던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발전하여 인간의 생체에서 뽑아낸 에너지로 작동하면서 가상세계를 만들어 인간을 지배한다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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