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PC 글쓰기문화]『뭘 써, 톡톡치면 될걸』

  • 입력 1997년 9월 8일 07시 46분


「PC는 펜보다 강하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상징하는 것 중에 이제 펜과 컴퓨터 만큼 대조적인 것도 별로 없다. 40,50대가 젊은 시절에 「고급 만년필 하나 가졌으면…」하던 바람은 신세대에는 「성능좋은 컴퓨터와 프린터를 갖고 싶다」는 소원으로 둔갑했다. 컴퓨터로 글쓰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증거는 대학과 기업 같은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과제를 낼 때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해 프린터로 뽑은 문서로 제출하도록 한다. 아예 디스켓으로 제출하라는 열성 교수도 종종 볼 수 있다. 리포트를 친필로 써야 하는 곳은 사법고시 준비를 염두에 둬야 하는 법학과 뿐이다. 그래서 대학마다 전산실에 가면 숙제하느라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학생들로 늘 북적댄다. 기업에서도 직원은 누구나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모든 서류는 이미 펜이 아니라 컴퓨터로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가 지닌 장점이 많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수정하기 쉽고 읽기 쉽고 관리하기 편하다. 하지만 비록 소수지만 펜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들은 글을 쓸 때마다 종이에 번지는 잉크의 촉촉함과 손 끝에 느껴지는 펜촉의 쓱쓱거리는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특히 편지 같은 글을 쓸 때는 친필로 써야만 서로간에 정을 느끼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컴퓨터로 글을 쓰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고 창의력이 감소한다고 믿는다. 물론 신세대는 이런 얘기에 도무지 공감할 수 없다. 컴퓨터와 함께 자라온 탓에 10,20대 중에는 아예 컴퓨터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 많다. 문서 파일에 암호를 넣으면 과거처럼 일기장을 누가 볼까봐 여기저기 숨겨 놓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들은 펜을 가지고 손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 불편한 행위도 없다고 말한다. 백지장앞에 펜을 들고 있어봐야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정리가 되지 않는다. 빈 화면에 키보드로 톡톡거려야 생각도 잘 떠오르고 정리가 잘 되는 것은 요즘 젊은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젊은 층에서 요즘 명필을 찾아보기 힘들다. 컴퓨터에 익숙한 만큼 글씨체가 나빠지고 글쓰는 속도도 점차 느려지고 있다. 이제는 본인의 필체가 좋아야 하는게 아니라 워드의 글씨체가 좋은 것을 골라야 한다. 「쓰는 시대」는 가고 「치는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우리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김종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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