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슬라이스를 곁들여 먹으면 좋은 미국 맥주 블루문(Blue moon)에 대한 설명이다.
5년 전쯤 처음 블루문을 접했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전까지 내게 맥주는 그저 쓰고 탄산 많은 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회식 때면 늘 소주를 섞어 들이켜는 ‘폭탄주 제조용’ 술. 하지만 지인의 권유로 블루문을 처음 만난 순간, 코끝을 상큼하게 치고 들어오는 오렌지 향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들이켠 맥주가 입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고 난 뒤 꽃향기와 홉향의 여운이 남았다. ‘맥주가 맛있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후 한국에서도 친한 지인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맥주나 술을 파는 곳을 찾는다. 여럿이 둘러앉아 서로 다른 종류의 맥주를 시켜 놓고 시음도 해보고, 이 맥주는 맛이 어떻다 의견도 나눈다. 자연스레 술을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으로 대한다. 덜 취하고, 더 재밌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다행히 최근 국내에서도 술과 관련된 규제가 많이 풀리고 수제 맥주 산업이 성장하고 있어 다양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
더불어 한국의 술 문화도 다양하고 유연하게 변했으면 한다. 특히 회식문화. 매번 모든 참석자가 묻지도 않고 똑같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반복적으로 들이켜고 뻗은 뒤 해산하는 문화는 이제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다. 각자가 서로 맛과 향이 다른, 좋은 술을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음미하는 그런 회식은 언제쯤 가능할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임박한 지금, 삶의 여유와 다양성이 술자리에도 찾아오길 기대한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