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96>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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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 사이 위나라 중군으로 다가든 조참이 위표를 알아보고 곧바로 그를 덮쳐갔다. 명색 왕이라 그를 호위하는 무사도 있었지만 조참의 기세가 워낙 사나워 그 앞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아장(亞將) 몇을 제친 조참의 큰 칼이 위표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위표가 기죽지 않고 창을 들어 조참의 칼을 막았다. 그 또한 오래 전장을 달린 터라 어렵지 않게 한칼을 받아냈으나, 가슴 속은 이미 소성 밖에서 패왕을 만났을 때만큼이나 두려움이 가득했다. 스스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여겨 벌써 몸을 뺄 틈만 노렸다.

“이놈 위표야. 우리 대왕께서 너를 박하게 대접하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의제(義帝)를 시해한 역적에게로 되돌아갔느냐? 아직 어여삐 여기시는 정이 우리 대왕께 남아있을 때 어서 항복하여 목숨이라도 보전하라.”

조참이 그렇게 외치며 다시 큰 칼을 울러 맸다. 실로 빈 말이 아니었다. 한왕 유방은 한신과 조참이 떠나기 전에 특별히 당부했다.

“그래도 위표는 과인이 관동(關東)으로 나왔을 때 제후로서 가장 먼저 제 스스로 항복해온 귀함이 있다. 게다가 장수로서 기백도 있고 재질도 총명하니 되도록이면 그를 사로잡아 과인이 다시 쓸 수 있도록 하라.”

그런 한왕의 당부에 조금 전 조참의 칼질에도 인정이 남아있어 위표가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칼을 쳐든 조참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한층 험악했다. 거기다가 몇 달 함께 싸우면서 조참의 용력을 익히 보아온 위표였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며 몸을 피하려는데 때맞추어 부장(部將) 하나가 싸움 가운데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대왕, 이곳은 저에게 맡기시고 어서 피하십시오. 좌우군(左右軍)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습니다.”

위표가 얼결에 몸을 빼고 싸움터를 돌아보니 정말로 그랬다.

아직 한신의 중군이 이르기도 전에 위군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한신이 과감하게 펼친 학익진(鶴翼陣)의 기세에 눌려 싸워보지도 않고 내빼기 시작한 탓이었다. 장졸이 아울러 무엇에 홀린 듯했다.

그 광경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든 위표는 마지막 담력을 짜내 말머리를 돌리고 다시 한번 전세를 되돌려 보려 했다. 허리에서 보검을 빼 높이 쳐들고 크게 외쳤다.

“서라! 과인이 여기 있다. 모두 되돌아서서 적을 쳐라. 달아나는 자는 상하를 가리지 않고 목을 베겠다!”

그 모습이 제법 장한 데가 있었으나 임 무너지는 기운 대세를 바로 잡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위표가 가까운 곳에서 달아나는 사졸들을 몇 베어가며 거듭 외쳐도 위나라 군사들은 돌아설 줄 몰랐다. 그때 다시 항타(項타)가 달려와 위표의 말고삐를 끌듯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대왕 틀렸습니다. 잠시 물러나 군사를 정비한 뒤에 다시 싸워봐야 될 듯합니다. 어서 군사를 물리시고 몸을 피하십시오.”

거기다가 저쪽에서는 조금 전 자신의 싸움을 가로맡은 부장이 조참의 한칼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본 위표는 못이긴 척 말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군사를 물려라. 우선 적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한 뒤에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싸워보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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