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죽음들의 전장… 새로운 슬픔이 쌓이네

  • 동아일보

[한시를 영화로 읊다] 〈130〉 서부의 노래, 변새의 노래

코언 형제의 옴니버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2018년)에는 서부극(웨스턴)의 익숙한 상황들이 엮여 있다. 고려시대 홍간(洪侃·?∼1304)의 다음 시에서도 변새시(邊塞詩)의 관습적 내용들이 이어진다.

변새시는 변방의 황량한 풍광과 이민족과의 전쟁, 그리고 종군하는 병사들의 고단함을 담은 오래된 한시 갈래이다. 주로 한나라 시대를 시간 축으로 삼고 변경의 황량한 사막을 공간으로 설정해 읊곤 한다. 시는 이전 변새시를 모자이크하듯 구성했는데, 특히 첫 구절에 등장하는 변방 사나이는 이백의 변새시(‘行行且逰獵篇’)로부터, 햇빛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갑옷의 이미지는 이하의 변새시(‘雁門太守行’)로부터, 마지막 구절의 전쟁이 가져온 비참한 주검들은 두보의 변새시(‘兵車行’)로부터 왔다.

서부 개척시대 문명과 야만의 대립을 그린 영화 장르인 서부극 역시 변새시처럼 영화사에서 오래된 장르 중 하나다. 변새시가 변경을 공간적 무대로 삼고 있다면 서부극은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 황야를 시공간으로 삼는다. 영화의 각 에피소드 역시 노래하는 카우보이, 은행을 털려는 무법자, 골드러시, 인디언의 습격, 역마차 등 이전 서부극의 전범적 내용들로부터 온 것이다.

시는 전형적 변새시와 달리 변방의 장쾌한 사냥 장면을 묘사하거나 이민족을 무찔러 국가에 공을 세우겠다는 바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도리어 변새를 이전의 죽음을 이어 새로운 죽음이 찾아오는 비극적 공간이라고 노래했다. 표현 자체는 두보의 시구로부터 온 것이지만, 재구성을 통해 익숙한 내용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몽골과의 전쟁으로 고통받던 당시 고려의 참혹한 현실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번개 같은 총 솜씨를 선보이던 주인공 버스터 스크럭스는 자신보다 더 빠른 총잡이를 만나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번개 같은 총 솜씨를 선보이던 주인공 버스터 스크럭스는 자신보다 더 빠른 총잡이를 만나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 역시 서부극의 전통을 비트는 방식으로 기존 영웅 신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버스터 스크럭스는 번개 같은 총 솜씨로 결투에서 매번 승리하지만 결국 더 빠른 총잡이를 만나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시에서도 변새는 주인공이 이민족을 통쾌하게 무찌르는 승전의 장소가 아니라 부질없는 전쟁으로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시와 영화 모두 장르적 전통의 변주를 통해 익숙한 관습의 타성을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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