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민주화 후퇴를 강력히 경고했다는 보도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FP통신 등 서방 언론은 미국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이 20일 푸틴 대통령을 비공개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크렘린의 과도한 권력집중 등을 비판했다”고 전했다. ▽부시-푸틴 밀월 관계 깨지나=지금까지 체첸 사태 등 러시아 국내문제에 대해 침묵해 온 부시 대통령이 재선 이후 첫 미-러 정상의 만남에서 이례적으로 러시아 민주화 문제를 거론했다는 사실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더욱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는 거대한 영토에 많은 민족이 살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맞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즉각 반박한 것으로 알려지자 미-러의 ‘밀월관계’가 부시 2기 행정부에서 큰 변화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섣부른 분석까지 나왔다.
비판적인 언론과 대기업을 탄압해 온 푸틴 대통령은 최근 지역구 의원을 없애고 하원 의원 전원을 정당별 비례대표로 뽑고 주지사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외의 비판과 우려의 소리가 높지만 부시 대통령은 외면해 왔다.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쟁에 적극 협력해 온 푸틴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러한 미-러 관계에 변수로 등장한 것은 2기 부시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 사령탑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의 부상이다. 라이스 보좌관이 러시아통이라는 점이 오히려 러시아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그는 “러시아를 적절히 봉쇄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기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어떤 국가도 없는 최신예 핵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해 곧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황급히 “새 미사일은 방어용”이라고 해명한 것도 미-러 관계의 이상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대화 내용에 의혹도=그러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 국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우려나 충고도 하지 않았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반면 AFP 등은 과거에도 부시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 민주화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고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 때문에 두 정상이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 민주화에 대해 논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대선 때도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서 “러시아가 미국에 중요한 국가라고해서 러시아의 문제에 대해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