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반(半)통령'

  • 입력 2003년 1월 27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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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와 만난 민주당의 ‘신주류 개혁파’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는 지금 있는 당을 없애고 새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야단이던 사람들이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않던 정권 재창출이 이루어지자 어쨌든 이겼으면 됐지 당 개혁을 할 게 뭐 있느냐고 하고 있어요. 당 분위기에도 그렇게 흘러갈 조짐이 보이고. 그래서 서둘러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승리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고 선언했지요.”

민주당 내 신·구 주류간 갈등의 속사정이다. 여기에 당권다툼까지 맞물려 있으니 정작 당 개혁이란 한동안 시끄럽다가 말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올 상반기가 지나면 총선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이고 그러면 개혁은 대충 끝났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與野)를 불문하고 대다수 국회의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의원배지일 것이다. 그들은 개혁하는 일보다 의원배지 유지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물며 개혁이 자신의 의원직 유지에 불리하다고 하면 한사코 반대할 것은 뻔한 이치다.

▼‘야당 죽이기’와 ‘발목잡기’▼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지난주 민주당 연찬회에서 ‘반(半)통령’ 얘기를 한 데는 이런 분위기에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기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야대여소(野大與小)에서 난들 무슨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소’ 하는 얘기다. 여기에 ‘정권을 잡았으니 한자리들하고 싶을 테지만 그것 역시 총선에서 이기고 난 뒤에나 봅시다’는 얘기도 덧붙인 셈이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아니, 하루 전에 우리 당을 방문해 상생(相生)정치 하자더니 그건 쇼란 말인가’라며 발끈했는데 여기서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상생정치’가 과연 총선에서 이기면 안 해도 되고, 지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냐는 점이다. 노 당선자가 설마 그런 뜻으로 말했을 리 없다면 한나라당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중심제는 내각책임제에 비해 통치의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제도다. 안정적 국정운영에는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의 국회의석 과반수 점유가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른바 ‘단일정부’ 효과인데,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제왕적 대통령’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경험한 바다. 반대로 입법부인 국회를 야당이 지배하는 ‘분점정부’의 경우 한국의 대통령은 ‘야당 죽이기’에 나서고 야당은 ‘발목잡기’로 버틴다. 이 또한 지난 정권에서 신물날 만큼 경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노무현 정권이 해야 할 일은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진정한 여야 상생정치로 한국 정치의 격(格)을 높이는 것이다. 이야말로 ‘탈(脫)3김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리더십에 주어진 책무가 아니겠는가.

가능성의 문은 좁지만 열려 있다. 우선 3김식 가부장적(家父長的) 리더십은 이제 퇴조했다. 아직은 완강하지만 지역주의의 벽도 차츰 낮아지는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어렵다. 상생정치가 자리잡으려면 정당민주화가 선행돼야 한다. 정당에 소속된 의원들이 사사건건 당론에 묶여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아무리 야당 의원을 만나 설득한다고 한들 대화와 협력의 정치는 말뿐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당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손상을 입히지 않는 한 국회의원은 정책사안별로 소신투표(크로스보팅)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생정치 틀 잡는 데 애써야▼

그러자면 원내정당화로 중앙당의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당 총재도 필요 없고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계파 보스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문제는 정당개혁, 특히 정치인에게 맡겨진 정당개혁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유권자의 힘으로 바꿔내야 하는데 이 또한 이른 시일 내에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 당선자는 이러한 한계에서나마 상생정치의 틀을 잡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임기 내내 노력해도 큰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한 자체만으로도 정치발전에 커다란 기여가 될 것이다.

당선자에게 묻습니다. 오늘의 전환기에는 수(數)의 논리로 개혁을 밀어붙이는 ‘전(全)통령’보다는 대화와 설득의 ‘반(半)통령’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닐는지요.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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