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나의 무대 3]IMF 모스크바 사무소 부소장 권구훈씨

  • 입력 2002년 10월 7일 18시 14분


IMF 모스크바 사무소 인근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출근중인 권구훈 부소장.
IMF 모스크바 사무소 인근 트베르스카야 거리에서 출근중인 권구훈 부소장.
1997년 말 초유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비로소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IMF 모스크바사무소 부소장을 맡고 있는 권구훈(權九勳·39)씨는 “당시엔 ‘어떻게 하면 IMF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느냐’고 물어온 한국인 사업가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작 IMF가 뭐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권 부소장은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어려움에 빠진 나라에 차관을 제공하는 IMF는 세계의 중앙은행인 셈”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러시아는 IMF 차관을 받고 있지 않아 차관집행 업무는 없지만 러시아의 경제동향을 본부에 보고하고 러시아 정부의 각종 정책 자문에 응하는 것이 권씨가 주로 하는 일이다.

본부에 보낼 보고서를 쓰는 틈틈이 러시아 관리나 경제계 인사를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 보면 일찌감치 해가 지는 모스크바의 하루는 더욱 짧게 느껴진다.

▼글 싣는 순서 ▼

- ①유엔 정무국 이라크문제 담당 차기호씨
- ②유엔 경영관리국 자금부 홍주선씨

“최근 러시아 경제가 호전되고 있지만 1998년 모스크바발 세계 경제위기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해 조그만 이상 징후에도 긴장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높은 원유수출 의존도 등 불안 요소가 많다는 말이다. 그런만큼 보람은 더 크다.

“제가 하는 일이 러시아에서 시장경제를 자리잡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항상 자긍심을 느낍니다.”

1992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논문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권씨는 IMF에 입문하기 전에도 은사인 제프리 삭스 교수 등과 함께 1년여 동안 러시아 사유화 작업의 실무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빛 바랜 10년 전의 사유화증서를 아직도 소중히 갖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인 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구소련권 관련 일을 주로 맡다보니 워싱턴 본부보다는 생활여건이 나쁜 모스크바나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등에 자주 근무하게 돼 부인과 두 아이에게는 늘 미안하다.

“IMF의 해외사무소는 대개 IMF로부터 돈을 빌려쓰고 있는 이른바 ‘후진국’에 많기 때문에 본부 근무보다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최근 들어 어릴 적부터 해외생활을 한 ‘해외파’들이 국제기구나 외국 기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권씨는 군복무까지 마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으니 ‘국내파’라고 할 만하다. 유학 생활 초기에 햄버거 하나 사먹기도 어려웠을 정도로 ‘영어’ 때문에 고생했다고 한다. 그는 국내에서 외국어 교육을 받거나 자기처럼 늦게 유학을 떠나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불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창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쓰고 말하는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실무적인 일만 하다보니 경제학자로서는 시각이 좁아지는 것 같아요.”

권씨는 얼마 전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 경제학 관련 국제학술지에 실을 논문 하나를 준비 중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권구훈씨는…▼

▽1962년 경남 진주 출생

▽학력〓서울대경제학과(81학번),미국하버드대경제학박사(1992년)

▽경력〓1993년 IMF에 들어와 워싱턴 본부와 우크라이나 키예프

사무소장으로 근무.

1998년 사직하고 네덜란드계 ABN·AMRO은행 이코노미스트로

런던에서 근무. 2001년 IMF에 복직

▽IMF 근무여건〓“근무조건이 좋고 정년도 60대 이후여서

안정적이다. 특히 연금 등 각종 혜택이 많다.”

▽IMF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국제현실을 한 나라의 입장이

아니라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어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러면서도 항상 냉혹한 국제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국제금융기관에서 일하려는 후배들에게〓“일찍부터 준비하라.

국제금융기관인만큼 경영대학원이나 대학원에서 경제 관련

전공이 필수다. 국제기구에서 생존하려면 전문지식과 표현력이

필수인데 영어실력도 표현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간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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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에서 일하려면…▼

IMF는 국가별 채용 할당제가 없다.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직원을 뽑는다. 전문직 공채(EP)로 해마다 30∼40명을 선발한다. 2년간 연수를 받은 후 정식 임용되는데 5% 정도는 연수과정에서 탈락한다. 지원 자격은 33세 이하로 경제학박사 학위가 있으면 유리하다. 선발시 3차례의 면접 중 1차 면접은 주제를 놓고 응시자들끼리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IMF의 직급은 A1∼A14와 관리직인 B1∼B5까지 모두 19개로 나뉜다. 최고위직인 국장급은 B5이며 EP 출신은 A12부터 시작한다. 권씨는 A14로 관리직인 B1 승진을 앞두고 있다. 1000여명의 전문직 중 한국인은 10명 안팎. 최근 퇴직한 경희대 출신의 추계영씨가 B4(부국장급)까지 올라 IMF에서 가장 출세한 한국인으로 꼽힌다. 자세한 채용 정보는 http://www.imf.org/external/np/adm/rec/job/joboppo.ht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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