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대기업 핵심인력 확보 경쟁

  • 입력 2002년 10월 9일 17시 43분


‘인재경영.’

올해 한국 기업경영의 핵심 화두다.

최근 주요 그룹 총수들은 공개석상에서 기업의 미래상을 설명할 때마다 ‘해외 우수인재 확보’ ‘핵심인력의 집중육성 및 보상 강화’ ‘재능 있는 인재집단의 선점’ 등 인재경영의 실천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우수인재 유치가 21세기 ‘두뇌경쟁 시대’에 기업의 존망을 가름하는 핵심 과제라는 데 대해 대부분의 기업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로 핵심인력을 찾아나서는 경영진을 보며 ‘어려운 시절 회사를 지켜온’ 대기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러면 나는 잉여인력인가” 하는 자조도 새나온다.

▽인재경영 바람〓기업의 경영활동에서 우수인재의 확보와 양성이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은 없었다.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李秉喆) 창업주 시절부터 ‘인재 제일’을 회사의 이념으로 내걸었으며 LG SK 현대 등 주요 그룹들도 한결같이 인간 중시의 경영을 모토로 삼아왔다.

하지만 ‘인재경영’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정보기술(IT)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98년 컨설팅업체 매킨지가 ‘인재 확보 전쟁’(War for talent)이라는 보고서를 펴내면서부터. 매킨지는 이 보고서에서 정보화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핵심인력(Top Talent)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인재경영(Talent Management)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이후 한국에서 인재경영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올 6월.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사장단 회의에서 “앞으로의 시대는 탁월한 천재 한 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리는 시대”라며 사장단의 인사고과에 해외 우수인재 확보 실적을 반영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삼성전자 인재개발연구소장 안승준(安承準) 상무는 5∼10년 후에 ‘돈벌이가 될 사업’이 무엇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기업환경을 인재경영이 부각된 배경으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미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10년 후의 수익사업을 미리 예견하고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미래의 최고경영자(CEO)를 확보하는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누가 핵심인력인가〓대기업 총수들이 인재경영을 강조할 때마다 해외의 석·박사급 인력의 확충 계획을 밝히면서 ‘인재경영〓해외 우수인력 확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인재 유치 경쟁으로 미국 내 한국계 기술인력과 MBA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LG경제연구원의 이춘근(李春根) 연구위원은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차 등 세계 무대에서 1위를 다투는 기업들이 글로벌화나 첨단기술인력 확보라는 절실한 필요로 해외 인력을 찾아나서는 것을 보고 다른 기업이 문제의식 없이 따라 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파 인력’은 ‘핵심인력’의 동의어가 될 수 없으며 기업의 사업특성이나 회사의 경영철학에 따라 핵심인재의 정의는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중국집에서는 자장면을 맛있게 뽑는 주방장이 핵심인력이라는 것.

해외 핵심인력을 채용했을 때 이들이 안정적으로 조직에 적응할 기회를 기업이 제대로 제공할 수 있느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권택(鄭權澤) 수석연구원은 “해외파 인력을 유치해 놓고도 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충성심을 갖춘 조직원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나 문화가 없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해외 인력을 채용할 때 업무경쟁력과 함께 조직문화에 대한 적응 가능성 등 정서적인 측면까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

▽인재경영의 그늘〓최근 헤드헌터업체인 닥스HR가 회사원 8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3.2%가 “나는 회사의 핵심인력”이라고 답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이같은 대답도 많아져 과장급 이상에서는 70.5%가 자신을 핵심인력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회사의 ‘특별관리’ 대상이라고 밝히는 핵심인력의 비율은 전체 직원의 5∼20% 수준. 회사와 뚜렷한 ‘의견차’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직원보다 높은 보수와 직급으로 외부 우수인력을 채용했을 때 조직의 충성도 하락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려대 경영대의 문형구(文炯玖) 교수는 “외부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충분한 유인책을 제공할 수밖에 없지만 기존의 직원과 과도한 격차를 두면 자칫 기업 내부에 있는 핵심인력까지 동요시켜 기업이 위기를 맞거나 외부의 유혹이 커졌을 때 쉽게 이탈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공정한 평가와 보상, 내부 인력에 대한 교육기회 확대 등을 통해 기존 조직원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인재경영 관련그룹 총수들의 말말말▼

▽“그동안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성과주의는 더욱 철저히 시행하고 실천의 주체인 인재를 찾아내 육성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구본무 LG그룹 회장, 1월)

▽“아날로그 시대에 축적된 경험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에는 빠른 두뇌와 독창성이 중요하다. 가치창출의 원천은 인재이며 기업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수인재를 확보, 유지하는 것이 다른 기업을 앞설 수 있는 힘이 된다.”(손길승 SK그룹 회장, 2월)

▽“회사가 보유한 인재의 가치가 곧 회사의 가치를 나타내는 시대이다. 경영환경이 디지털화되고 지식과 정보가 중요한 경영의 요소인 시대가 되면서 인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유상부 포스코 회장, 3월)

▽“20세기가 경제전쟁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두뇌전쟁의 시대다. 삼성은 각 분야에서 우수한 인력을 국적에 상관없이 확보해 나갈 것이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5월)

▽“탁월한 한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다. 경영자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하며 핵심인재 확보를 위해 사장단도 직접 뛰어야 한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6월)

▽“2010년에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에 진입하려면 미래주역인 신입사원들이 도전과 개척의 현대정신을 가져야 한다. 나만의 경쟁력을 파악하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 현대차 그룹이 필요로 하는 인재다.”(정몽구 현대차 회장, 8월)

▽“인재육성을 통해 부문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주요 핵심분야에 외부 인력을 과감히 영입, 능력과 업적으로 경영성과를 평가해 나가기 위한 ‘인재경영’을 실천하겠다.”(박삼구 금호그룹 회장,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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