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총장, 2년 전 썼던 칼럼에 답이 있다[오늘과 내일/신광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1일 2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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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논설위원
신광영 논설위원
이원석 검찰총장은 제주지검장이던 2022년 4월 주요 일간지에 6차례 연달아 기고를 한 적이 있다. 현직 검사장이 신문 오피니언면에 직접, 그것도 여러 매체에 등장한 건 이례적이었다. 그의 칼럼은 당시 여당이 한창 밀어붙이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입법에 반대하는 글이었는데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검경을 수직적 관계로 보던 기존 인식을 벗어던졌다. 자신이 수사하거나 지휘했던 사건들을 생생히 소개하며 두 기관이 힘을 합치고 서로 검증해야만 범인을 단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는 검찰 과오에 대한 반성이었다. 정치적 사건에 공정성이 부족했다는 지적, 살아있는 권력에 굴종했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일을 못한다고 무력화시킬 게 아니라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더 엄히 꾸짖어 달라고 했다.


검사장 때 ‘검수완박 반대’ 6건 기고

연쇄 언론 기고 한 달쯤 뒤 이 총장은 대검 차장에 올랐고, 몇 달 후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총장이 됐다. 이젠 어느덧 2년 임기 중 4개월을 남겨두고 있다. 그가 칼럼에 썼던 대로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든 공정하게 실체를 규명하는 데 수사권을 쓰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실현했는지 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은 검찰 수장의 내공을 시험대에 올린 사건이다. 수사 대상이 현직 대통령의 부인이고,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원칙대로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지만 검찰 수사는 김 여사에 대한 검찰 고발이 이뤄진 지 5개월이 지나도록 잠잠했다. 이 총장의 신속·집중 수사 지시는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에야 나와 ‘특검 대비용’이란 비판을 자초했다. 그 후 10일 만에 이 총장의 뜻과 다르게 단행된 인사로 수사팀 지휘부가 물갈이되면서 제대로 수사가 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총장 패싱’ 인사가 있었다고 해도 검찰의 최종 책임자가 이 총장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김 여사 수사를 견제하는 용산과 이를 ‘김 여사 특검’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야권의 이중 압박을 풀어내는 게 그의 과제다. 그러자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으로부터 검찰의 중립을 지켜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명품백’ 엄정 수사로 그때 다짐 지켜야

윤 대통령과 이 총장은 한때 검찰 수사권 수호를 위해 한배에 탔었다. 윤 대통령이 총장에 취임할 때 그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발탁했다. ‘검수완박’을 저지하기 위한 검찰 대응을 총괄하는 핵심 참모였다. 이 총장이 검찰 대표로 언론에 기고했던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이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 총장은 인사권으로 검찰을 흔드는 대통령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야권이 벼르고 있는 ‘검수완박 시즌2’에 맞서고자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검찰 수사권의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만 한다. 그는 최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형사사법 체계가 정쟁의 트로피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정치권을 비판했는데,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야말로 형사사법 체계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 총장이 2년 전 기고했던 자신의 칼럼들에서 답을 찾았으면 한다. 물증까지 나와 있는 명품백 사건조차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는 검찰이라면 그가 6번이나 칼럼을 쓰면서까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검찰이 과연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기가 4개월밖에 안 남았고, 곧 있을 후속 인사에서 수사팀마저 교체될 수도 있지만 이 총장은 흔들림 없이 수사 지휘에 매진해야 한다. ‘총장 패싱’ 인사 다음 날 이 총장은 기자들에게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고 말했는데 적어도 수사만큼은 책임지고 완수하는 게 그가 2년 전 칼럼에서 했던 다짐을 지키는 길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이원석 총장#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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