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21]서울 소각장 마구 증설…'국민의 돈' 불탄다

  • 입력 1999년 11월 9일 19시 58분


코멘트
쓰레기 발생량을 훨씬 넘어서는 거대용량의 쓰레기 소각장시설이 말썽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또다시 예상량을 크게 웃도는 소각장을 곳곳에 건설중이거나 건설할 계획이어서 수천억원대의 예산 낭비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같은 사실은 경실련과 동아일보가 ‘부패없는 맑은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동운영중인 클린펀드에 들어온 제보를 동아일보 취재진이 추적, 확인했다.

현재 서울시가 가동중이거나 건설을 추진중인 쓰레기소각장은 모두 8곳. 이들 시설이 완공되어 모두 가동될 경우 하루 처리용량은 5850t규모다.

그러나 서울시내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 중 음식물을 제외한 가연성(可燃性)쓰레기의 하루 배출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3400여t에 불과하다. 가연성 쓰레기의 배출량을 훨씬 넘어서는 소각시설이 건설되고 있는 것.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가동중인 노원구 상계동과 양천구 목동 등 두군데 소각장의 가동률도 시설용량의 29%와 59%선에 머무르고 있다.

또 다음달 완공예정인 강남구 소각장도 하루 처리용량은 900t규모지만 음식물쓰레기까지 포함하더라도 지난해 생활쓰레기 발생량이 447t에 불과해 서울시 스스로 가동률이 50%선에 못 미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시설 건설에 투자되는 총예산 1010여억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혈세’가 낭비된 셈이다. 이처럼 기존시설의 가동률이 형편없이 낮은 것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서울시는 2005년까지 마포 송파 중랑 구로 강서 등 5개 지역에 하루 총 3800t규모의 소각시설 건설을 추진중이다. 이 계획은 97년 확정된 것. 그러나 이들 신규 소각시설의 가동률도 또다시 40∼70%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실련과 시민환경단체 전문가들의 일치된 추정이다.

예컨대 내년중 마포구에 착공되는 소각시설의 용량은 하루 1000t규모지만 여기서 처리될 마포 용산 중구의 하루 가연성 쓰레기발생량은 모두 420t에 불과하다. 환경문제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음식물쓰레기까지 모두 소각한다 해도 쓰레기 발생량은 740t규모로 처리용량에 훨씬 못 미친다.

강서구 오곡동에 추진중인 소각시설의 사정도 마찬가지. 이 시설의 처리용량은 하루 1500t으로 잡혀 있지만 여기서 처리될 강서 종로 영등포구와 인천시 부평 계양구의 가연성 쓰레기 발생량은 하루 691t선. 음식물쓰레기까지 전량 소각한다고 가정해도 하루 1282t정도다.

이 마포구와 강서구 소각시설의 건설에는 각각 2970억원과 3750여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기존 계획대로라면 이 두 소각시설에서만 수백억원대의 막대한 예산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두 소각시설을 포함, 건설예정인 5개 소각시설에 투입되는 총예산액이 1조170여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3000억∼4000억원대의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소각시설의 용량이 과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서울시도 소각시설의 용량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중랑구의 소각시설을 당초 750t에서 560t규모로 줄인다는 것 이외에는 아직 구체적인 조정안이 없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낭비가 불보듯 뻔한 소각시설 건설이 계속 추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97년말 확정된 서울시 계획이 95년 쓰레기종량제 실시와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촉진 등에 따른 생활쓰레기 발생량의 축소 추세를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미 가동중이거나 완공을 앞둔 상계동 목동 및 강남소각장의 경우는 당초 다른 구의 쓰레기까지 반입할 계획이었으나 오염문제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민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행정기관이 일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자의적으로 추진한 ‘밀어붙이기식 사업’이 초래한 예산낭비 사례의 전형인 셈.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는 “서울시가 소각시설 건설업체들의 로비를 받고 소각시설의 용량을 의도적으로 과다 계상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97년 계획 수립 당시 쓰레기 종량제와 재활용 등의 효과를 오판해 발생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지금도 음식물 자원화율이 6%선에 불과해 음식물쓰레기도 대부분 소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남아도는 용량은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경실련 등 시민환경단체에서는 “계획중인 소각시설들이 완공되어 가동이 시작되는 2002년 무렵부터는 생활쓰레기 발생량이 지금보다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며 “생활쓰레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음식물쓰레기의 자원화율을 현수준으로 전제하고 ‘반환경적’인 소각방식으로 이를 모두 처리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실제로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의 분석결과 생활쓰레기 가운데 유리 자기 금속 연탄 토사 등 소각에 부적합한 물량을 제외하면 소각가능량은 전체 생활쓰레기의 28.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서울시 주장의 신빙성이 의문시된다.

이 단체의 양장일사무국장은 “서울시가 쓰레기발생량 추이 등을 주먹구구식으로 분석, 수천억원대의 예산낭비를 초래했다”며 “서울시는 이들 소각시설 건설계획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관여한 실무자와 이를 지휘한 고위책임자들을 모두 가려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단계에서 볼 때 쓰레기소각장 문제의 핵심은 부당하게 과다계상된 시설용량의 재조정과 함께 그 책임문제에 대한 엄중한 추궁이라는 얘기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