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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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해보험 90세 현역 설계사 한상철 씨

한상철 씨가 KB손보 호남지점 사무실에서 고객과 통화하며 밝게 웃고 있다.
한상철 씨가 KB손보 호남지점 사무실에서 고객과 통화하며 밝게 웃고 있다.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정 양복에 목과 손목 부분만 흰색인 짙은 자주색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그는 구순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머리 숱이 적기는 하지만 흰 머리카락은 거의 없었다. 보청기를 끼지 않고도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안경 없이 신문의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12일 광주에서 만난 한상철 씨는 현역 최고령 보험설계사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KB손해보험 호남지점 고문 겸 광주 동구 광명로 백두대리점 대표로 영업 일선에서 뛰고 있다. 성과도 탁월하다. 최상위 실적을 기록한 설계사들에게 회사가 주는 영예인 골드멤버 대열에 1998년 처음 합류한 후 2000년만 빼고 18번 개근하고 있다.

그가 현재 관리하는 고객은 1700명 정도. 그 가운데는 자영업을 하는 장기환 씨처럼 86년 그가 보험 영업을 처음 시작할 때 계약을 한 이후 지금까지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장씨의 집안 사정에 대해 쪽 꿰고 있었다. 고객 관리의 일단을 보여준 셈. 그는 “기존 고객이 새로운 계약자를 소개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고마워했다.

그의 지난해 연봉은 세전 기준으로 2억4000여만원. 그가 고용한 여직원 2명의 월급과 기존 고객 관리 및 신규 고객 발굴을 위한 교제비 등에 주로 사용한다. 경조사도 한달에 수십여건 챙긴다. 그는 또 “밥은 굶어도 사치는 좀 부린다”면서 쇼핑하는 데도 돈을 쓴다고 했다. 호남지점 직원들은 “술을 잘 사주셔서 인기가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한상철 씨는 손주뻘인 호남지점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한상철 씨는 손주뻘인 호남지점 젊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그는 지금도 고객이 전화하면 새벽에라도 현장에 달려 나간다. 무엇보다 교통 법규에 관한 한 웬만한 교통경찰보다 많이 알고 있는 그의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한번은 잠옷만 걸친 줄도 모르고 고객의 사고 현장에 급히 뛰어가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장을 열심히 다니면서 도로교통법을 연구하다 보니 교통사고를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가령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교통사고를 내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형사 처벌을 받는 10개항 적용을 받지 않는데 과거 일부 교통경찰은 이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객의 모럴 해저드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2002년 근로자재해보험에 가입한 한 고객이 아킬레스 건 파열을 이유로 보험금 2억5000만을 신청했을 때 그의 이런 정신이 빛을 발했다. 계약자가 입원한 병원을 직접 찾아가 진단서 등을 확인하고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그는 이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아킬래스 건이 파열되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 계약자는 처음 입원한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가서 MRI(자기공명영상) 촬영을 했다. 경찰서에 개인적으로 고소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법원에 탄원서까지 제출한 끝에 2004년 재판장 직권으로 2300만원으로 합의했다. 계약자가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 합의에 응한 게 아니겠는가.”

불의를 못 참는 그의 이런 성격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는 “경찰공무원이었던 형님이 정복을 착용한 채 관용차를 타고 부친에게 인사하러 왔을 때 부친은 ‘너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면서 인사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꼿꼿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역시 공무원이었던 부친은 사적인 일로 관용차를 이용한 아들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

1953년 경찰에 투신해 30여년 일한 그가 보험 영업에 뛰어든 것은 정년 퇴직 이후인 1986년이었다. 일시금으로 받은 퇴직금을 사기당해 막막했던 그에게 당시 범한화재(현 KB손해보험)에서 일하던 한 친척이 보험 영업을 권했다. “형님은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니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친척의 예상은 정확했다.

그가 아직도 현장을 지키는 것은 부모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은 데다 스스로 관리를 열심히 한 덕분이다. 담배는 처음부터 아예 손을 댄 적도 없고, 부친의 가르침에 따라 지금도 술을 한잔 할 때는 항상 물을 같이 마신다. 또 매일 아침 저녁으로 냉수 샤워를 할 뿐 아니라 욕조 난간을 잡고 팔굽혀펴기를 100회씩 한다. 그는 “혈압이나 당뇨, 전립선 등에서 전혀 문제가 없어 건강 검진을 하는 병원에서도 놀란다”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현장에 머물겠다”고 다짐했다.

광주=윤영호 금융전문기자 yyoungho@donga.com
#kb손해보험#90세#현역#설계사#한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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