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국어 한류]<3>원전강국 한국어 열공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6일 03시 00분


UAE서 한국어 강좌 코스는 프로되는 필수 코스

《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보면서 ‘계양년애’라는 단어를 들었어요. 그런데 어제 자음동화와 ㄴ(니은) 첨가 현상을 배워서 ‘계약연애’라고 써야 한다는 걸 바로 알았어요.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 그렇게 쓸모 있는 말을 계속 가르쳐 주세요.” 》
올해 4월 초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시내 아부다비극장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송유진 세종학당 교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현지 세종학당 수강생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있다.
올해 4월 초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시내 아부다비극장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송유진 세종학당 교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현지 세종학당 수강생들에게 다도를 가르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에 사는 에이사 알 마즈루에 군(17·고교 2년)은 아부다비 세종학당의 한국어 교사에게 수시로 한국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마즈루에 군은 한국어를 공부하다 모르는 게 생기거나 새로 익힌 단어를 활용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교사에게 연락하는, 적극적인 학생이다.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그는 지난해 10월 세종학당에 등록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방과 후 일주일에 이틀, 두 시간씩 수업을 받고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는 덕에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기자가 건네는 한국말을 거의 다 알아들었고, 부산이 고향인 교사에게서 재미삼아 배운 사투리로 “어서 오이소!” “뭐라 카노?” 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는 아부다비 세종학당 수강생 66명 가운데 한국어를 가장 잘하고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다. 꿈은 한국 대학의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하는 것. 지난여름엔 UAE 원자력전력공사(ENEC) 후원으로 고교생 25명과 2주 동안 한국을 방문했는데 부산의 고리원자력발전소와 유수의 기업들을 견학하면서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원자력 기술을 배워 와 나중에 UAE에 생길 원자력발전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어요. 한국과 UAE의 경제 교류가 늘어나고 있으니 한국어를 잘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UAE는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8000달러로 추산되는 부국(富國)이다. 주로 석유 수출로 돈을 버는 UAE는 석유 고갈에 대비한 미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을 준비하고 있다. 2009년 12월 한국전력이 주도하는 한국 컨소시엄이 UAE의 원자력발전사업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양국의 교류가 한층 긴밀해졌다. 한국이 UAE에 짓는 원전 4기는 2017년부터 순차적으로 완공되며 이후에도 한국이 60년간 운영 지원에 참여해 양국은 적어도 70여 년을 협력하게 된다. 원전 기술이 없는 UAE로서는 마즈루에 군처럼 한국의 원전기술을 배워 올 인재가 절실하다.

아부다비 세종학당의 수강생들은 마즈루에 군처럼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이 좋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진지하게 한국 관련 진로를 계획하고 있었다. 또 대다수 수강생이 이미 한국을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아부다비의 국립 자이드대에서 미디어를 전공하는 압둘라 무함마드 알 알리 씨(21)는 평소 흰 원피스처럼 생긴 아랍 남성 전통의상 칸두라를 입지만 헤어스타일은 ‘슈퍼주니어’처럼 꾸미고 다닌다. 그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의 창의성이 놀랍다”며 “서울에서 미디어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콘텐츠 제작을 배운 뒤 아부다비로 돌아와 드라마와 영화 제작사를 차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의 칼리파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누프 알 함리 씨(27·여)는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 지난해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어 발음과 한글의 모양이 무척 아름답다”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목적이 모든 국민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으니 그 또한 멋지다”고 감탄했다.

보수적 이슬람문화권인 UAE에서는 웬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면 타인을 집에 들이지 않지만 함리 씨는 처음 만난 기자를 흔쾌히 집으로 초대했다. 그의 방 안은 온통 현빈, 신화 등 한류 스타들의 사진과 DVD로 가득 차 있었다. 최근 한국 여행에서 한국 전통 자개에 반했다며 방을 새로 꾸미기 위해 한국에서 자개 가구를 풀세트로 주문하려던 참이라고 했다. “UAE와 한국 기업들은 수십 년 앞을 내다보고 협력하고 있어요. 지금 한국어를 배워놓으면 30년 후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뜻이죠. 아부다비에 한국 교민이 늘고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병원에서 한국어 통역 서비스를 하고 싶어요.”

2010년 10월 자이드대 캠퍼스 안에 문을 연 아부다비 세종학당은 한국어 수요가 예상보다 많아 그해 11월 두바이에도 분교를 열었다. 현재 교사 2명이 대학생반과 일반인반으로 나뉘어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오가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송유진 교사는 “아부다비에는 높은 기술력을 지닌 한국 가전회사, 건설사 등이 대거 진출해 있어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세종학당 수강생 대부분은 대학생과 공무원, 대기업 직원 같은 엘리트들”이라고 전했다.

한국어와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부다비 시민들은 크고 작은 한국 문화 축제들을 직접 기획해 열기도 한다. 3월 중순부터 한 달 반 동안 아부다비의 여러 대학 캠퍼스와 시내 곳곳에서는 ‘무궁화 축제’가 열렸다. 한국영화제, 민속놀이, 한식 맛보기, 한복 체험 등 다양한 한국 문화 행사가 잇따랐다. 이 행사를 주최한 단체 중 하나인 ‘아랍에미리트-한국 우호협회’는 지난해 4월 한국을 좋아하는 UAE 시민 28명이 모여 창설했다. 1년 만에 회원이 한국인을 포함해 15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 협회의 대표이자 세종학당 수강생인 후마이드 알 함마디 씨(31·공무원)는 “양국의 경제 교류는 증가하고 있지만 막상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는 게 안타까워 단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미영 교사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수요가 늘면서 아부다비의 고교들로부터 한국어 교사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지만 현지 인력이 부족해 안타깝다”며 “한국에서 교사들을 파견해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부다비=글·사진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어#한류#아부다비#U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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