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골프장 ‘흡연금지’ 한글 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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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주제는 ‘國格’]<147>아무데서나 담배피우는 한인

지난달 3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 호텔 앞. 50대의 한국인 남성 관광객이 점심 식사 후 호텔 정문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다 도어맨 훌리오 마르티네스 씨의 제지를 받았다. 이 관광객도 건물 내에서 금연이라는 사실을 알고 밖으로 나와서 피웠지만 도어맨은 “건물 밖에서도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피워야 한다”며 정문 옆 지정 흡연 장소를 안내해줬다. 마르티네스 씨는 “아시아 국가 중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호텔 인근에서 담배를 피워 자주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아직도 미국의 흡연 관련 법규와 에티켓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담배 피우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갈수록 흡연자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최대 의약품 유통업체인 CVS가 담배 판매를 전격 중단했을 정도로 사회 곳곳에서 금연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미국 성인의 흡연자 비율은 17.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이 미국에서 금연 공간을 무시하고 있다.

워싱턴의 관문인 덜레스 국제공항 인근은 장시간의 비행을 마친 뒤 참았던 담배를 피우려는 한국인들로 자주 북적인다. 특히 출입문 주변에 많은 편인데, 공항에서는 지정된 곳 외에는 흡연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종종 공항 관계자들과 한국인 관광객들이 충돌하는 장면이 목격된다. 덜레스 공항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3시간 넘는 비행을 마친 관광객들이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담배를 피우려다가 공항 경찰에게 적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주변 골프장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한국인들이 눈에 띈다. 골프장은 클럽하우스 주변이나 재떨이가 설치된 곳에서 흡연을 허용하지만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서 담배를 피우다가 관리 요원들에게 걸리는 한국인이 아직도 많다. 골프장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미국 관리인들은 화재를 우려한다. 미국인들도 종종 골프를 치다가 흡연을 하지만 상대적으로 화재 위험이 적은 시가를 피운다.

한인들이 자주 찾는 워싱턴 인근 골프장의 한 관계자는 “담배로 대형 화재가 난 적은 없지만 봄이나 여름처럼 건조할 때는 더욱 주의를 당부하게 된다”며 “한인들이 하도 담배를 자주 피워 한글로 ‘담배는 지정된 곳에서만’이라는 간판을 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직원은 “내가 아는 한인 교포는 담배를 피우려고 휴대용 재떨이를 갖고 다니는 것을 봤다”며 “한국의 국격에 맞게 담배도 주변을 배려해 즐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담배를 피운 뒤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다가 미국인들의 눈총을 사는 한인들도 줄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 교민은 “공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승용차나 택시에 오르는 순간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그냥 던지고 사라지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미국인들이 쳐다보면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고 말하거나 어디엔가 숨고 싶다”고 말했다.

담배꽁초를 버리면서 침이나 가래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는 한국인들도 여전히 목격된다. 한 미국인은 “담배를 피우면서 가래침을 뱉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수준을 보여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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