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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오늘과 내일/이명건]블랙리스트 시험대에 오른 조국

입력 2019-03-06 03:00업데이트 2019-03-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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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부딪치면서 가야 하는 수사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검찰 핵심 간부는 이렇게 전망했다. 청와대와, 그리고 검찰 내부에서 충돌이 벌어질 것이란 의미다. 그렇더라도 후퇴는 없다는 뜻도 담겨 있다.

검찰 안팎에선 송인배 전 대통령정무비서관 수사 당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8월 ‘드루킹 특검’으로부터 송 전 비서관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올 1월 그를 불구속 기소할 때까지 상당한 진통에 시달렸다. 검찰 내부에선 “권력은 다 똑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수사팀은 지난해 11월 당시 현직 청와대 비서관인 그를 소환 조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기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동이 걸렸다. 사유는 적용 법리 문제 등이었다. 많은 검사들은 청와대 의중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기소하기까지 두 달이 더 걸렸다. 계속 비서관 신분을 유지하던 송 전 비서관은 정확하게 기소 일주일 전 사퇴했다.

그를 끝내 기소한 수사팀이 바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다. 그래서 이 수사도 청와대와 여당 등의 맞바람에 뒷걸음질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검사 다수의 시각이다. 여기엔 수사 실무 책임자의 수사 능력 및 근무 경력에 대한 판단이 깔려 있다. 그는 박근혜 정부 후반 대통령민정수석실에 파견돼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민정수석이 우병우였다. 현 정부 출범 직후 검찰 인사에서 그가 지방의 지청으로 발령 나자 검사들은 “수사 실력이 탁월한데도 ‘우병우 라인’으로 찍혀 물먹었다”고 했다. 그를 잘 아는 검찰 간부는 “그가 바로 ‘검찰 블랙리스트’의 희생자였다. 그래서 현 정부 블랙리스트의 작동 원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사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김은경 전 장관 등 환경부 관계자들이 대상이었다. 청와대 측엔 소환 통보도 안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합법적 체크리스트’라며 방어선을 쳤다. 검찰이 확보한 환경부 문건과 관계자 진술에 위협을 느껴서일까. 조만간 검찰은 김 전 장관을 재소환한 뒤 청와대 인사수석실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본게임 시작이다. 충돌 파열음이 검찰과 청와대, 여의도를 휘몰아칠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이 총력을 기울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에까지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권력 기관 개혁 전략 회의’에서 “검찰이 대통령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다면 공수처가 필요 없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조 수석은 ‘공수처 신설’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정치권력과 기득권 편에 섰던, 힘 센 검찰의 권한을 공수처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년 전 자신의 대담집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폈다. 심지어 국회의원은 공수처 수사 대상에서 제외해도 좋다는 ‘꼼수’까지 똑같았다.

그렇다면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공수처 신설 여부의 시금석이 될 만하다. 펄펄 살아 있는 권력, 청와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검찰이 송 전 비서관을 기소한 것처럼 끝까지 밀어붙여 권력 핵심의 썩은 폐부를 도려낸다면 공수처 추진 근거는 흔들릴 것이다. 물론 수사에 예단은 금물이다.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은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 수사는 특히 조 수석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수사가 잘되면 조 수석은 궁지에 몰리고, 공수처 신설 명분은 약해진다. 그는 검찰 업무를 관장한다. 수사에 제동을 걸 것인가.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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