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장악’ 아이티, 홈경기 한번 못 치르고도 월드컵 진출[지금, 여기]

  • 동아일보

극심한 혼란 와중 52년 만에 쾌거
예선 마지막 경기도 네덜란드령서
佛국적 감독, 아이티밖 ‘원격 지도’

18일 카리브해 섬나라로 최빈국인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시민들이 자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환호하고 있다. 아이티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52년 만이다. 권력 공백에 따른 극심한 갱단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티는 대표팀이 홈구장조차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포르토프랭스=AP 뉴시스
18일 카리브해 섬나라로 최빈국인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시민들이 자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환호하고 있다. 아이티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52년 만이다. 권력 공백에 따른 극심한 갱단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티는 대표팀이 홈구장조차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포르토프랭스=AP 뉴시스
중남미 카리브해의 섬나라로 유엔에서 최빈국으로 분류하고 있고, 갱단(조직폭력배) 간 유혈 충돌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아이티가 1974년 이후 52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극심한 빈곤과 사회 불안을 겪는 와중에 이뤄낸 쾌거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18일 아이티는 ‘2026 북중미(미국·멕시코·캐나다) 월드컵’ 예선 조별리그에서 니카라과를 2-0으로 이기고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이날 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선 수만 명의 주민들이 본선 진출 축하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통상 포르토프랭스는 밤에 인적이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갱단에 의한 살해, 납치, 폭행 같은 범죄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나라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이 승리는 아이티가 멸망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고 WP에 전했다.


인구 1200만 명의 아이티는 2010년 대지진으로 국가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되다시피 했다. 그 뒤 아이티는 각국의 원조에 의지하고 있다. 또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암살된 후 지금까지 국가수반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갱단이 수도의 90%가량을 장악하는 등 사실상 치안이 붕괴된 상황이다. 유엔은 올 7월 “아이티 수도가 사실상 갱단에 의해 마비됐다”고 평가했다. 집을 떠나 국내에서 피난 생활을 하는 국민도 130만 명에 달한다.

갱단 장악 지역에 축구 경기장이 있어 아이티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예선을 홈구장에서 치르지 못했다. 18일 열린 니카라과와의 경기도 수도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퀴라소(네덜란드 자치령)의 빌렘스타트에서 진행됐다. 아이티 청년·체육·시민활동부 장관은 “아이티는 홈 경기 한 번 없이 본선에 진출한 사상 최초의 국가가 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신으로 아이티 국가대표팀을 이끈 세바스티앵 미녜 감독은 공항 폐쇄로 아이티를 방문하지 못한 채 원격으로 팀을 지도했다. 또 아이티 선수 중 다수가 외국에서 거주하는 아이티 국적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WP에 따르면 예선 마지막 경기가 펼쳐진 날은 ‘베르티에르 전투 기념일’이었다. 이날은 1803년 아이티인들이 프랑스군을 상대로 결정적 승리를 거둔 것을 기려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 1804년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을 수립한 나라다.

한편 인구 15만 명의 소국 퀴라소도 이날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AP통신은 “인구 기준으로 남자 축구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역대 가장 작은 나라”라고 전했다.

#아이티#월드컵 진출#갱단 장악 지역#세바스티앵 미녜 감독#원격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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