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원폭 피해자 20%가 한국인…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8월 6일 13시 26분


히로시마 원폭투하 80주년 방송서
한국인 생존자 인터뷰 등 집중 조명

경남 합천에 거주하는 핵폭탄 생존자 이정순(88) 씨. BBC 캡쳐
경남 합천에 거주하는 핵폭탄 생존자 이정순(88) 씨. BBC 캡쳐
“아버지가 막 출근하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달려와서 당장 대피하라고 하셨어요. 거리에 시체가 가득 찼고, 어렸던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아 계속 울기만 했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이정순(88)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는 “원자 폭탄은 정말 무서운 무기”라고 거듭 강조했다.

영국 BBC 방송은 5일(현지 시간)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80주년을 맞아 그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한국인 피해자’의 고통을 조명했다.

BBC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으로 인한 참상은 그간 잘 기록됐지만, 직접 피해자의 20%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실전 투하한 1945년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35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히로시마의 인구 42만명 중 한국인은 14만 명이었다. 이들은 일제에 강제 징용 노동자로 끌려왔거나 생계를 위해 이주를 온 사례가 다수였다. 한국 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이 중 7만 명이 원폭의 피해를 보았다.

BBC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다수 거주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을 찾아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도 전했다. 이 씨는 당시 겪은 충격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고통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고 BBC에 전했다. 그녀는 피부암, 파킨슨병, 협심증 등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합천군에 있는 기념관에는 원폭으로 사망한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진 목패 1160개가 보관돼있다. BBC 캡쳐
합천군에 있는 기념관에는 원폭으로 사망한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진 목패 1160개가 보관돼있다. BBC 캡쳐
원폭 피해는 본인의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치명적이다. 피해자들은 원폭 피해의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씨의 아들은 신부전을 진단받고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 또 다른 2세대 생존자인 한정순 씨는 대퇴골 괴사로 걸음이 불편한 상황이다. 한 씨의 아들도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그럼에도 피해자 2세대, 3세대는 법적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83세 생존자 심진태 씨는 “아무도 피해자들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원폭을 투하한 나라도,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 나라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사과하지 않았고, 일본은 모른 척합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책임을 전가하고, 우리는 홀로 남겨집니다.”

원폭 투하 직후 히로시마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출신의 외지인인 한국인들이 위험한 작업에 대거 투입된 탓에 피해가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기복지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일부 생존자들은 잔해를 치우고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일본인 피난민들은 친척에게로 피난했지만, 지역 연고가 없는 한국인들은 도시에 남아 방사능 낙진에 노출되었고 의료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치명률이 57.1%로 전체 피해자 치명률(33.7%)을 훌쩍 뛰어넘는다.
#히로시마#원자폭탄#원폭 피해#BBC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