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내 전임자” 13번 언급…국정연설 68분내내 트럼프 맹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8일 15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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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미 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이 직면한 이슈는 나이가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늙었느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가진 국정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증오와 분노, 복수와 심판은 가장 낡은 생각들”이라며 “미국을 후퇴시킬 이런 고루한 생각으로는 미국을 이끌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을 둘러싼 ‘고령 리스크’를 역이용해 대선 출마 선언 당시 “나는 여러분의 복수이자 응징”이라고 밝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대결을 펼치는 바이든 대통령은 첫 4년 임기의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경제·외교 성과를 강조하며 재선 이후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바이드노믹스(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론, 이스라엘 지원 논란, 불법 이민자 문제 등 대선 쟁점들을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데 집중했다.

● 연설 시작부터 끝까지 트럼프 겨냥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1시간 8분 동안 진행된 국정연설에서 모두 13번에 걸쳐 ‘나의 전임자(predecessor)’를 언급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미국에선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경쟁 후보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시종 라이벌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자신을 비교하며 공세를 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시작과 함께 “내 전임자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게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며 “러시아 지도자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공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꼬집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관계를 부각한 것.

미중관계를 두고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태평양에서 인도, 호주, 일본, 한국 등과 동맹을 활성화했다”며 “미국의 최첨단 기술이 중국의 무기로 사용될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내 전임자는 중국에 대해 강경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했다.

1·6 의사당 난입사태와 낙태권 폐지, 불법 이민자 문제, 총기난사 범죄 등을 두고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늘날처럼 민주주의가 공격을 받은 적이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최대 쟁점으로 집중 거론하고 있는 불법이민자 문제와 관련해 “나는 그가 ‘미국의 피를 더럽힌다’고 말한 것처럼 이민자들을 악마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유민으로, 사슬에 묶어 강제로, 또는 기아에 허덕였던 우리는 모두 꿈을 좇아 타지에서 왔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고 덧붙였다.

● 야유에 맞고함 친 바이든, “트럼프는 내 또래”
대선 캠페인 체제로 본격 전환한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비판과 함께 자신의 나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진 않겠지만 꽤 오래 살았다”고 농담을 던지며 “이 나이가 되면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생을 통틀어 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며 “하지만 내 또래의 다른 이에게 미국은 증오와 복수, 응징”이라고 했다. 77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81세인 자신과 비슷한 나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

일각에선 최근 잦은 실언으로 고령 우려가 커진 바이든 대통령이 수천만 명의 시청하는 신년 국정연설에서 실수하면 재선 도전이 물거품이 되는 대형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원고에 없던 내용을 즉석에서 추가하거나 불법 이민자 문제를 두고 야유를 보내며 고함을 지르는 공화당 의원에게 맞고함을 치며 언쟁을 벌이는 등 ‘힘없는 노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격렬하고 대립적인 연설은 나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 “가자지구 마음 아파”, 실망한 지지층 달래기
바이든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선 억만장자 증세와 낙태권 보장 성문화,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 강화 집권 2기 청사진도 내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15%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21%로 인상하겠다고 밝히며 “내 목표는 대기업과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 정당한 수준의 세금을 내도록 해 연방 적자를 3조 달러(3985조 원) 줄이는 것”라고 했다.

또 “미국인들이 만약 ‘선택의 권리’를 지지하는 의회를 만들어 준다면 나는 낙태권을 법률로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에 대해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며 “미군에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임시 항구를 가자지구 해안에 건설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도 인도적 지원 허용 등 역할을 다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스라엘 지원에 비판적인 청년층과 유색인종, 낙태권 폐지를 비판하는 여성, 대기업과 대립각을 세우는 노동조합 등 2020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대결에서 승리의 발판이 된 핵심 지지층들을 결집해 올해 대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CNN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경제 문제에 대해 약 6분을 할애했으며 이어 낙태권 등 보건복지에 대해 5분 30초,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문제에 3분 50초를 썼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첫 국정연설이었던 2022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실시간 반박 나선 트럼프 “최악의 연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실시간 반응을 올리며 바이든 전 대통령에 반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최악의 국정연설”이라며 “바이든은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푸틴은 바이든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 “공화당은 시험관 시술 보장 등 여성을 돕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글을 올리는 등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를 집중 부각했다. 공화당은 이날 2022년 당선된 공화당 최연소 여성 상원의원인 케이티 브릿 상원의원(42·앨라배마)을 반박 연설자로 내세웠다. 브릿 상원의원은 국정연설에 대해 “내 나이보다 오래 정치를 한 ‘직업 정치인’의 연기”라며 “자유세계는 안절부절하고 쪼그라든 지도자보다 더 나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이날 “바이든이 (재선 시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9년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바이든 대통령이 전용기 탑승 중 계단에서 넘어지는 장면 등을 편집한 광고를 방송하기도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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